Ambivalence - 타인과 적 - 1장. Bharat. 바라트로 간 누트 샤인
| 21.01.20 12:00 | 조회수: 861


누트 샤인은 배에서 내렸다.

일주일 만에 밟아보는 육지의 느낌은 꼭 보드라울 것 같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점이 더 기분 좋았다. 발바닥 세세히 밟히는 유리알 모래가 오히려 짜릿했다.

“바라트!”

누트 샤인은 모래 사장을 지나 딱딱한 돌 바닥에 섰다.

“오! 바라트!”

몸을 숙여 땅에 입을 맞춘 누트 샤인은 배를 잡고 웃었다.

“키키. 키키. 키키키..”

누트 샤인은 웃음을 멈추었다. 구름 하나 없는 넓은 하늘을 한 번 보고는 앞을 직시했다.

“알로켄의 성지.”

끼륵. 끼륵.

뒤에서 갈매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누트 샤인은 뒤를 보았다. 자신이 타고 온 작은 배가 파도에 밀려갔다가 묶어둔 끈에 이끌려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또 다시 돌아온 것인가….”

누트 샤인이 혼잣말을 멈추자 모든 것이 적막해졌다.

바라트에는 아무도 없는 듯 했다.

“그래…. 데비나가 이곳을 폐쇄했었지….”

누트 샤인은 스스럼없이 누더기로 기운 망토를 벗어버렸다.

반점으로 얼룩진 누트 샤인의 늘어진 피부는 곳곳이 곪아 있었다. 바라트에 오기까지의 흔적이었다. 누트 샤인은 상처들을 어루만졌다.

“이곳이 끝이라면, 다시 한번 여기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겠지….”

누트 샤인이 바라트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랜드 폴 이전 누트 샤인은 바라트에 온 적이 있었다.

지금의 바라트는 지옥 같은 곳이었다.

크레스포는 카론의 사악한 기운이 스며든 지옥이었고 바라트는 그야말로 저주받은 땅으로 치부되었다.

우선 바라트는 사막과 밀림에 갇혀버린 고립된 땅이었다.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수단으로는 그나마 배가 안전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를 타는 것을 꺼렸다. 카론의 힘이 점점 트리에스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발이 땅에 닫는 곳에 있기를 원했다.

게다가 바라트는 알로켄의 성지였다. 그랜드 폴을 일으켜 카론이라는 존재를 각인시킨 알로켄의 성지에 애를 써서 가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사실 바라트가 그랜드 폴 이전에 대단한 명소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바라트는 조용한 곳이었다.

바라트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신의 땅이었고, 알로켄을 수행할 사제나 관리들이 키워졌다. 알로켄의 서기관이었던 누트 샤인도 그 때문에 바라트에 머물렀다.

알로켄에게 선택된 자들은 바라트의 평화와 고요를 맘껏 누렸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데려와 바라트에서 살게 했는데,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 소리가 간간히 시원히 울렸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강가를 거닐었다. 농사와 허드렛일은 그들이 부리던 노예들이 대신 해주었다.

누트 샤인에게는 물론, 그곳에 머물던 사람들에게는 바라트가 지상 최고의 낙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주 아르카나에서 돌아온 날 이후, 바라트는 가장 저주받은 곳이 되었다.

그 날, 방주 아르카나에 도착하자 아내 리엘은 서둘러 짐을 풀었다. 그러나 누트 샤인은 짐을 풀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겠소.”

“그곳은 안전하지 않아요.”

“그곳은 알로켄의 성지요. 잊었소?”

“알로켄의 성지이지, 사람의 성지는 아니에요.”

리엘은 머뭇거렸다. 불룩한 배가 눈에 띄었다.

“당신은 남아 있으시오.”

“여보.”

“내 고집을 꺾으려 하지 마시오.”

“당신 없이 살 수 없어요.”

하나 둘,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사람들은 아무 곳이나 누울 자리를 찾고 있었다.

누트 샤인은 도저히 함께 남겠다는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곳에서 끝을 봐야 한다는, 그 생각이 메아리가 되어 몸 속에서 휘몰아쳤다.

“…. 남아 있어.”

리엘은 남편의 손을 잡고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리엘은 눈물을 흘렸다.

알로켄으로부터 가장 총애를 받았던 인간, 누트 샤인. 그것이 남편의 자존심이었다. 리엘은 그것을 꺾을 수 없었다.

리엘은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밤이 되어서인지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두 개의 달이 떠올랐다.

누트 샤인은 그 현장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바라트에 자기 말고 남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모두들 페니키를 통해 방주 아르카나로 갔을 것이고, 알로켄과 인간들의 전쟁도 중앙 산맥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본 것은 누트 샤인이 마지막으로 회당을 꼼꼼히 살핀 후였다.

누트 샤인은 정말로 꼼꼼하게 살폈다.

신전의 높은 지붕을 받치고 있는 수 많은 돌기둥 하나하나를. 기둥을 위 아래에서 받치고 있는 네모난 돌들, 그리고 그 돌에 빼곡하게 새겨진 알로켄의 문자들을. 같은 간격으로 자른 돌을 수평으로 맞춘 바닥과 또한 그것에 새긴 신의 문양을. 천장에 그려진 알로켄 12명과 그 아래 놓여진 12개의 간결한 원통형 돌 의자를.

누트 샤인은 끝으로 구석 자리에 놓인 서기관의 작은 책상을 손으로 쓸었다.

바다를 등진 그 자리는 누트 샤인의 자리였다.

누트 샤인은 수 차례 이상 그 자리에 앉았고, 매번 자랑스러워했었다.

“하아….”

한숨과 함께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검은 바다가 유난히 빛이 난다고 생각한 그 순간, 누트 샤인은 그 자를 보았다.

꽤 먼 거리였지만, 그 자는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곧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와 땅을 쳤고, 땅은 균열을 일으켰다.

신전이 흔들렸고, 누트 샤인이 앉았던 책상도 흔들렸다.

“뭘 하는 거지? 칼리지오 밧슈!”

누트 샤인이 바닷가를 향해 바싹 다가간 찰나, 쩌억 갈라지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울렸다. 누트 샤인은 고개를 휙 돌렸다.

알로켄의 성스러운 신전이 반 토막이 나버렸다.

마주보는 두 개의 원통형 의자가 부수어졌고, 누트 샤인의 책상도 갈라졌다.

그렇게 그랜드 폴이 시작되었다.

누트샤인은 동강나버린 책상의 먼지를 손으로 쓸어냈다.

두 개의 원통형 의자도 마지막 그대로였다.

누트 샤인은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알로켄 12명의 그림은 거의 지워져 있었지만 금이 간 천장은 그런대로 양호해 보였다.

“이 신전도 나만큼이나 질기단 말이야.”

누트 샤인은 피식 웃었다.

칼리지오 밧슈는 알로켄의 대현자들 중 한 명이었다.

대현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살았지만, 중요한 의식을 치를 때는 꼭 성지인 바라트로 돌아왔다.

때문에 알로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랜드 폴의 의식이 시작된 곳을 알고 있었다.

바라트.

바라트는 칼리지오 밧슈가 두 개의 달이 합쳐지던 날, 이계의 문을 여는 의식을 행한 곳이었다.

그것이 바라트가 저주받은 땅이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누트 샤인은 책상가장 가까이 있는 동강난 의자를 노려보았다. 그 자리가 칼리지오 밧슈의 자리였다.

“너는. 어떻게 한 거지?”

어떠한 대답도 돌아올 리가 없었지만 누트 샤인은 날카롭고 진지하게 물었다.

누트 샤인은 조심스럽게 짐을 뒤적였다.

깊숙한 곳에서 반짝거리는 금 조각 두 개가 환하게 빛났다.

똑같이 생긴 금 조각 두 개를 나란히 들어올려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크레스포. 바라트.”

트리에스테 대륙 모양으로 생긴 책갈피처럼 작고 얇은 금 조각에는 나란히 크레스포와 바라트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 둘은 아니야.”

누트 샤인은 다시 칼리지오 밧슈의 의자를 노려보았다.

“그렇지?”

누트 샤인은 바라트의 지리에 환했다. 몰래 설치해 둔 비밀통로, 뒷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곳이 바로 이 회당이었다. 그래서 누트 샤인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서서 칼리지오 밧슈를 심문하듯 그의 자리를 추궁했다.

“그래요.”

목소리가 들렸다.

누트 샤인은 그랜드 폴이 일어났던 그날처럼 고개를 휙, 돌렸다.

“키키.”

그를 보자마자 누트 샤인은 웃음부터 났다.

“그래. 어떻게 알고 왔군. 아모르 쥬디어스가 알린 것인가?”

그는 대답하지 않고 하얀 옷으로 바닥을 스치며 천천히 걸었다.

“왜 다크 홀에서 날 도왔지?”

“글쎄…. 이것일까?”

그는 칼리지오 밧슈의 동강난 의자 반대편에 섰다.

그랜드 폴 당시, 부수어진 또 하나의 의자.

“….”

누트 샤인은 말없이 그 의자를 보았다. 점점 눈이 커다래졌다.

“그곳…. 그곳은….”

“후후.”

그는 누트 샤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아직 모르겠어?”

누트 샤인은 당황스러웠다.

‘처, 처음부터 정리하자. 처음부터.’

누트 샤인의 머리 속에 지난 날이 스쳐갔다.

엘타에서 바라트로 향하는 배를 타기 전, 크레스포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오기 전, 데네브에서 아모르 쥬디어스를 만나기 전, 다크 홀과 노라크 동굴에서 가리온을 만나기 전, 여정을 시작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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