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stament - 새로운 약속 - 4장. Ring. 인연의 고리
| 21.01.13 12:00 | 조회수: 869


크로오 산맥을 거의 다 내려온 바기족의 눈은 휘둥그래질 수 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트리에스테 대륙 최고의 도시 헬리시타는 잿빛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저기가 헬리시타?”

“뭐야. 완전히 폐허잖아!”

“족장님, 그냥 자덴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라.”

캄비라 바투는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헬리시타는 캄비라 바투가 자덴 다음으로 점령하려고 별렀던 도시였다.

그러나 처음 본 헬리시타의 모습은 캄비라 바투가 상상해왔던 것과 너무 달라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검은 하늘과 맞닿은 산맥을 넘어갈 때,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처참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도대체 여기가 헬리시타가 맞긴 한 거야?”

“너, 우리를 어디로 끌고 온 거냐?”

“인간을 믿은 우리가 잘못이지!”

괜히 성질이 난 바기족 전사들은 인간인 쿠리오를 탓했다.

“저, 저도….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쿠리오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헬리시타까지 바기족의 길안내를 자청했지만 사실 쿠리오에게도 헬리시타는 처음이었다.

쿠리오는 자덴을 점령해버린 바기족을 인카르 교단에 고발해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길을 안다며 거짓을 둘러대고, 헬리시타를 탐색하러 온 바기족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쿠리오는 캄비라 바투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직 인카르 신전에 가보지도 못했다. 혹시 인카르 신전은 아직 건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슬며시 발목 쪽으로 손이 내려갔다.

‘지금?’

쿠리오는 머리 속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상상해 보았다.

‘지금 캄비라 바투를 찌르고 헬리시타로 들어가면 인카르 신전에서 보호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반대로 자덴에 남은 내 친구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 어쩌면 인카르 교단이 무너졌을 수도 있어….’

수많은 가능성들이 쿠리오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무슨 생각을 하지?”

캄비라 바투였다.

불장난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쿠리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고 있냐고? 눈동자까지 굴려 가면서.”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에게 다가갔다.

“벼… 별 생각 없었… 습니… 다….”

쿠리오는 시선을 외면하며 대답했다.

“그래?”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러더니 싸늘하게 귓가에 소곤거렸다.

“그럼. 언제 할 거야?”

“…예?”

쿠리오는 가슴에서 덜컥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크로오 산맥 정상에 섰을 때 말이야.”

캄비라 바투는 여유만만했지만 쿠리오의 이마에서는 송골송골 식은 땀이 나오려 했다.

“헬리시타가 드넓게 보였지. 그리고.”

쿠리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도 확인했던 것을 캄비라 바투도 확인했던 것이다.

“뒤를 돌아보았어.”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에게 얼굴을 바싹 붙였다.

“난 정말 자덴이 보고 싶었어. 내가 정복한 땅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싶었단 말이야.”

캄비라 바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안 보이는 거야! 오! 맙소사! 자덴이 안 보였던 거야!”

“…!”

“네가 그랬지? 크로오 산맥 정상에 서면 앞으로는 헬리시타가 보이고, 뒤로는 자덴이 보인다고 말이야. 분명히 그랬었지?”

“아… 아마… 미로의 숲이 너무 울창해져서. 아니면, 모래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일… 겁니다!”

쿠리오는 다급히 둘러댔다.

“그래?”

“아… 아마….”

“그런 거지?”

“네!”

“쿠리오. 난 자네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헬리시타까지 왜 굳이 오려고 했는지 묻지는 않겠네.”

쿠리오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서라도 지금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귓전에는 여전히 캄비라 바투의 목소리가 돌았다. 소름 끼치는 바기족 특유의 역겨운 냄새와 함께.

“그래도 말이야.”

“….”

“내가 언제 칼에 찔릴 지는 알아야지. 안 그래?”

“…!”

캄비라 바투의 다른 손이 쿠리오의 무릎을 세게 쥐었다.

쿠리오는 번쩍 눈을 뜨고 내려 보았다. 단도를 감추었던 다리를 캄비라 바투가 꾸욱 누르고 있었다.

“호, 호신용일 뿐입니다.”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의 무릎을 더욱 세게 눌렀다. 마치 가느다란 풀 쪼가리를 짓이기는 것 같았다.

“족장님, 어떻게 할까요?”

곳곳을 탐사하던 바기족의 전사들이 캄비라 바투와 쿠리오 쪽으로 다가왔다.

쿠리오의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그래. 호신용일 뿐인 거야. 그렇지?”

“네!”

“그래. 좋아.”

그제야 캄비라 바투는 손에서 힘을 뺐다.

“난 널 믿겠다.”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에게서 떨어졌다.

“모두 모여라. 헬리시타로 들어간다.”

“정말로요?”

“그냥 가죠?”

“확인은 해야지!”

쿠리오는 덜덜 떨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제길…!’

그 순간, 자신은 결코 캄비라 바투를 찌를 수 없음을 깨달았다.

“보기가 역겨워.”

“시체들이란 원래 다 그래.”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해 보이는군.”

“인간을 동정하는 거야?”

“이봐! 쿠리오! 넌 어떻게 생각 하냐?”

“….”

쿠리오는 할 말이 없었다.

검게 타버린 듯한 시체를 넘고 또 넘었다. 검게 썩어 들어가는 시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쉿. 이리로.”

캄비라 바투와 바기족 전사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시체가 많은 길로 돌아갔다.

“꼭 이런 길로 가야 해?”

“그래. 위대한 바기족의 전사들이 이렇게 시체들 틈을 지나야겠어?”

“쿠리오. 다른 길도 있지 않겠냐?”

바기족 전사들은 계속해서 쿠리오에게 시비를 걸었다.

“소란스럽지 않게 나가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쪽에서는 그나마 이 시체들도 치우고 있었습니다.”

“뭐야? 입만 살아가지고!”

“조용히들 해라.”

캄비라 바투는 천천히 앞에서 걸었다.

‘날 믿는다고? 언젠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내가 찌를 수는 없지만, 꼭 그렇게 만들어 주고야 말겠다!’

쿠리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잠깐만!”

캄비라 바투의 외침에 쿠리오는 속마음이 들킨 줄 알고 화들짝 놀랬다.

“예?”

“저기!”

캄비라 바투의 말보다 걸음이 빨랐다.

“저리로 가!”

바기족 전사들도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부산스러웠지만, 곧 캄비라 바투를 따라갔다.

“어! 저건!”

“족장님!”

쿠리오는 바기족 전사들이 둘러 싼 틈으로 눈을 굴려 살폈다.

“저 분은!”

쿠리오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검보라빛 머리칼을 흔들며 은은한 미소를 짓던 그 사람.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을 것 같은 여린 모습. 그리폰을 타고 자덴의 하늘을 날았던 인카르의 전령.

“시에나님!”

쿠리오가 외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캄비라 바투는 채찍에 갈긴 것마냥 온 몸이 찢긴 시에나를 가만히 들어 올렸다. 오른쪽 어깨는 좀 먹은 듯한 상처가 심하게 곪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은 핏기가 완전히 사라져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주, 죽었을까요?”

쿠리오가 나섰다.

“당연히 죽었지.”

“얼굴색을 봐. 저게 살아 있는 거냐?”

“족장님, 그냥 내려 놓고 가요. 인간이에요. 그것도 죽은.”

캄비라 바투는 가만히 얼굴을 대보며 말했다.

“죽었어도. 내가 살릴 거야.”

캄비라 바투는 시에나를 품에 안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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