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rak - 이교도의 유물 - 5장. Root. 폭군의 뿌리
| 20.12.16 12:00 | 조회수: 1,177


벌겋다 못해 하얗게 독이 오른 용암은 스물 스물 땅을 먹어 치우며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가리온과 시에나의 얼굴에는 훅훅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홧홧 얼굴을 데우는 땅의 열기에 고개를 숙일 수 없던 시에나가 얼굴을 들어 통로를 바라보는 순간, 시에나의 검고 깊은 눈동자가 누트 샤인의 커다란 갈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시에나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누트 샤인은 일그러진 얼굴에 비열한 웃음을 씨익 흘렸다.

"무슨 일이오?"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던 가리온은 뒤로 물러서는 시에나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 저기……."

시에나는 통로를 가리켰다. 가리온이 위를 쳐다보니 얼굴 하나가 쑥 빠져 나와 있었다.

둥글고 기괴한 물체. 울퉁불퉁한 얼굴 하나가 통로에 달려 있었다. 가리온은 크루어에 손을 대면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시에나도 지팡이를 꽉 쥐었다.

"넌, 뭐냐?"

"크크크……. 버릇없는 젊은이들. 거기서 뭘 하나……."

가리온은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입을 열자 더 경계하며 노려보았다.

"크크크……. 안심하게. 난 그냥 늙은이야……. 그래. 그리 나쁜 늙은이는 아니지. 크크……."

누트 샤인은 일단 두 사람이 경계심을 풀도록 유도했다.

"이봐, 이봐. 우선 거기서 피해야 할 것이야. 용암이 흘러나오고 있잖아. 조금 있으면, 분수처럼 폭발할지도 몰라. 그러니 우선 피하게. 그렇지. 이리로 올라오는 게 좋겠는데. 어서 이리로 오라구."

가리온과 시에나는 누트 샤인이 수상쩍었지만, 그의 말대로 용암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선택의 여지 없이 누트 샤인이 있는 통로 쪽으로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크크크, 그렇게 늘쩡거려서야 어디 쓰겠어? 젊은 사람이 씩씩하게 걸어야지! 힘 뒀다 뭐 하려고 그러누."

누트 샤인은 망토를 잔뜩 눌러쓴 채, 소름 끼치게 웃어 젖히다가, 가리온과 시에나가 통로까지 오자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통로로 쏙 들어가 버렸다.

누트 샤인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가리온과 시에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상대는 노인이었다. 싸우더라도 가리온과 시에나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 둘은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시에나부터 통로로 다시 올라갔다.

시에나를 올려 보낸 뒤, 가리온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글자가 쓰여 있는 벽면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무언가를 두고 가는 느낌이었다.

"크크. 자네 뭐하나. 어서 올라오게. 아가씨만 살면 안 되지. 잘못하다가 어린 나이에 황천 갈 수도 있어. 크크크……."

누트 샤인은 통로 벽에 몸을 붙이고 계속 주절거렸다.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음산하게 웅웅 울렸다. 그 기분 나쁜 음색에 가리온은 시에나가 걱정되었다. 가리온이 통로로 올라섰을 때, 시에나는 조금 떨고 있었다.

용암이 언제 뿜어져 나올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통로 안은 으스스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통로에서 똑바로 바라 본 누트 샤인의 모습도 으스스함 그 자체였다.

누트 샤인은 얼굴만을 제외하고 몸 전체를 망토로 휘감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공간에 얼굴만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모습은 그야말로 귀기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사람이오?"

가리온은 누트 샤인의 기묘한 모습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이런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런, 젊은 친구. 이 노인네를 놀리는 것인가?"

누트 샤인은 가리온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바기족이시죠?"

시에나는 부들부들 떨던 몸을 추스르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트 샤인은 시에나의 말에 당황한 듯 했지만, 곧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어린 아가씨가 많이도 알고 있군."

가리온은 속으로 짐짓 놀랐다. 바기족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랜드 폴의 영향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 종족, 그들이 바기족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리온의 앞에 있는 누트 샤인은 괴물치고는 너무나 작았다.

"하지만 바기족은, 미로의 숲 건너에 사는……."

시에나는 가리온이 말하는 의미를 금방 알아차리고 말을 이었다.

"몸집은 작아 보이지만, 저 망토 속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죠."

누트 샤인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크크크……. 이것들이.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것 같아 도와주려 했더니 오염체로 몰아버리는 구만. 이래서 인간들은 안돼. 크크크……."

시에나는 통로 아래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누트 샤인을 향해 물었다.

"바기족이 노라크 교도들과 손잡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요?"

"영리한 아가씨가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면 다치기 십상이지. 크크……. 사정이야 어쨌든 간에 우리 세 사람이 여기서 이렇게 만났고, 이 밑에서 어떤 위험한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런 걸 지금 따져야겠는가? 일단 살고 봐야 하는 게지……. 허허."

가리온과 시에나는 난데없이 나타난 누트 샤인이 볼수록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바기족은 기회를 잘 타 약삭빠르게 행동하기로 유명한 종족이었다.

"저희는 이미 방법이 있습니다."

가리온은 통로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동굴 입구가 나무뿌리로 막혀져 버렸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가리온이었다. 누트 샤인도 위를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방법이라……. 이 급경사의 미끄러운 통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려고? 크크……. 올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 모르지, 또. 불덩어리 같은 용암이 꿀꺽꿀꺽 올라와 길을 녹여줄지. 크크……. 그 때쯤이면 젊은 자네들은 이미 용암 속에서 헤엄치는 신세가 될걸. 아주 뜨뜨읏하겠구먼. 으흐흐흐……."

가리온은 이 늙은 추물의 말은 상관하지 않고 시에나를 데리고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게다가……. 거대한 나무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오랜만의 제물인데, 쉽게 내보내 주겠나? 크크……."

"그게 무슨 소리죠?"

시에나는 뒤돌아보며 물었다.

"크크크……. 영리한 자네들은…….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용암은 흘러나오는데 말이야. 저기 동굴 벽에는 오래된 글자가 새겨져 있고, 여기 이 통로에는 한기가 차 있고, 또 저 위에는 오래된 거대한 나무가 있지. 그리고 또 그 주위에는 무성하게 풀이 돋아 있는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이 있고……. 크크……. 무언가 이상하지 않아?"

그렇다, 누트 샤인의 말대로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이 동굴에서 용암이 터져 나올 정도라면, 거대한 나무는 물론, 동굴 벽에 새겨져 있는 글자도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리온은 누트 샤인에게 물었다.

"그럼 용암은 터지지 않습니까?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이런, 이런, 성격이 급한 친구네. 크크……."

누트 샤인은 가리온을 외면하며 기분 나쁘게 웃어댔다.

"방법을 알고 계시다면, 빨리 알려주셔야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시에나는 아래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뜨겁게 달구어진 공기가 통로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누트 샤인은 눈을 반짝이더니 천천히 말했다

"모두라……. 크크……. 좋아. 좋아……. 노라크 교가 트리에스테 전체에 알려진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지. 사실 노라크는 인카르만큼 오래 된 것인데 말이야. 밀교라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그들은 안정을 유지하려는 인카르의 방침에 어긋났어요. 트리에스테에는 현재 안정이 유지되어야 해요."

시에나는 누트 샤인의 말에 기분이 상한 듯 했다.

"인카르의 방침에 어긋났다고? 크크……. 웃기는군. 그 방침은 누가 정한 것이지? 어차피 인카르에서 만든 신전 나부랭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들이 정한 것 아닌가? 그들이 신이야? 그들은 욕심 많은 인간들에 불과해!"

누트 샤인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커다란 눈동자에 빨간 실핏줄이 일어서며, 시에나에게로 쏠렸다. 시에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흉측해서 움찔했지만, 지지 않고 마주보았다. 시에나는 인카르의 조디악이 될 몸이었다.

"더러운 인카르 것들!"

누트 샤인의 눈은 거의 튀어나올 듯 했다. 보다 못한 가리온이 나섰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행동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누트 샤인은 여전히 시에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크크크. 그래도 기사 양반이 저 인카르 계집애보다 상황판단이 빠른 모양이군. 그렇지. 인간이란 게 살아있어야 그나마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야. 그냥 죽어버리면 남을게 없거든."

타는 듯한 용암의 열기는 점점 더 차올라 와, 뼛속까지 떨고 있던 시에나마저도 땀을 뻘뻘 흘리게 되었다. 시에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 눈앞의 바기족 노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어서 말씀해주세요."

"어허. 연약한 아가씨가 부탁하니, 들어줘야 하나? 크크. 여기서 살아 나가고 싶으면 조용히 듣고나 있으라고."

누트 샤인이 말을 마치는 순간, 갑자기 통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이쿠 이런, 드디어 시작되었군. 이 늙은이의 잔소리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네. 기회가 된다면 말이야. 크크크……. 우선은 피해야겠어."

누트 샤인은 작은 몸을 이끌고 통로를 두리번거리다가, 볼록하게 나온 한 부분을 잡고 발을 디디더니 구부정하게 섰다.

"여기로군……."

가리온과 시에나가 영문을 몰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사이 어두운 통로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가리온이 놀라서 통로 벽에 기대려고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에나가 외쳤다.

"통로가……. 통로가 넓어지고 있어요!"

다급해진 가리온은 고개를 들어 누트 샤인을 찾았다. 그러나 망토에 가려서인지, 워낙 작은 체구 때문인지 어두운 통로 안에서 누트 샤인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시에나 역시 누트 샤인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앗!"

시에나는 흔들리는 통로 안에 주저앉아 버렸다.

"무슨 일이오? 괜찮소?"

시에나는 통증으로 인한 비명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누트 샤인의 촉수에서 뿜어져 나온 독기가 시에나의 숨통을 조인 것이다.

"이런, 빗나가 버렸군. 나이를 먹으니 눈이 보여야 말이지. 크크크……. 그렇지만, 뭐, 고통이 길지는 않을 거야. 크크크."

"이런 비겁한 놈!"

가리온은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살폈지만, 누트 샤인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통로가 점점 넓어지면서 시에나의 발 밑이 쩌억 벌어졌다.

"헉!"

제대로 소리도 낼 수 없는 시에나가 발버둥치며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에나!"

"아차차, 조심하라구. 이 통로는 나무뿌리가 꼬여 만들어진 거라서, 잘 풀리거든. 크크크……. 자연은 정말 대단한 것 같으이. 크크크."

누트 샤인의 말과 함께 지글지글 타오르며 바닥을 흐르는 용암의 벌건 빛에 어두웠던 통로의 실체가 드러났다. 미끄럽고, 차갑고, 울퉁불퉁했던 통로는 입구에 있던 거대한 나무뿌리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용사들의 무덤 중간에 있던 거대한 나무는 폭군의 나무였다. 나무의 뿌리는 용사들의 무덤까지 퍼져 있었는데, 땅 위로 뻗은 거대한 키만큼이나 지하로도 욕심스럽게 원기를 내뻗었다. 땅 밑으로도 계속해서 뿌리를 내리던 나무의 힘은 용암이 있는 곳까지의 타고 내려왔고, 뿌리의 작음 틈들이 통로를 만들었다. 가리온과 시에나는 그 축축하고 미끄러운 뿌리를 타고 끊임없이 내려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누트 샤인의 말처럼 노라크 교도들이100년 넘게 이 동굴에 터전을 잡고 있었다면, 이런 나무뿌리와 용암에 의해 방해 받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노라크 교도들만의 공간이 있어야 했다. 이계로 향하고자 하는 이교도들만의 비밀스러운 곳이.

누트 샤인은 고서를 통해 바로 그 숨겨진 공간에 대한 사실을 알고 미리 피했던 것이다.

터억.

서 있던 자리의 뿌리가 풀리면서 속절없이 떨어지던 시에나는 용케도 간신히 뿌리 끝을 잡았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었지만, 손안에는 땀만 가득해질 뿐 곧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았다.

‘이렇게 뿌리 끝을 잡고 매달렸지만…….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시에나는 모든 것이 아득해져 왔다.

"이런, 인카르 아가씨. 마법이라도 부려야 살 수 있지 않겠어? 아아. 인간이라서 마법이라도 쓰려면 정신력을 모아야 하지? 크크크. 나약한 인간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크크크……."

갈라지는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지만, 누트 샤인이 어디 있는가 찾는 일보다는 가리온 자신의 상황이 더 다급했다. 가리온이 서 있는 자리도 서서히 뿌리가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리온은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우선 시에나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리온은 서둘러 서 있던 자리에서 시에나가 붙잡고 있는 뿌리로 뛰어 매달렸다.

“앗! 시에나!”

“으어어……!”

가리온이 뿌리에 매달리자 그 반동으로 그만 시에나는 잡고 있던 뿌리를 놓쳐 버렸다. 시에나의 가는 팔이 공중에서 힘없이 흔들렸다.

'이……. 이런……. 이게……. 이게……. 끝……. 이대로!'

시에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시에나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쳐 흘렀다.

얇은 오클라스 자락이 허공에서 흔들리는 시에나의 몸을 휘감았다. 마법사로서 인카르에 입성할 때, 듀스 마블이 지어준 옷이었다.

"내 뒤를 이어, 인카르 최고의 마법사가 되어라."

비단결 같은 흰색 오클라스를 입은 시에나를 듀스 마블이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이런 날을 기다린 게 아닌데…….'

시에나는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가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시에나를 꽉 붙잡았다. 붙잡힌 몸으로 전해지는 열기는 타오르는 용암보다 더 뜨겁고 충만했다.

"내 어깨에 매달릴 수 있겠소?"

시에나의 가는 팔을 잡은 가리온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시에나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시에나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요! 당신은 살 수 있어요!"

시에나의 팔에서 자꾸만 힘이 빠지는 듯하자, 가리온은 희고 여린 팔을 더욱 세게 잡아 끌었다.

"어서, 내 어깨에 업혀요!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겠소."

가리온은 시에나를 잡은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으아아-!"

근육에 불끈 힘이 들어가면서, 가리온의 오른쪽 팔의 탄력이 더해졌다. 지금 상태로 그녀 스스로가 업히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가리온은 오른팔로 시에나를 끌어 올려 그녀의 몸이 탁 어깨에 걸쳐지도록 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기사로군요……. 고마워요…….'

시에나는 가리온의 어깨에 기댄 채 흐느끼면서, 독기에 잠겨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가리온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시에나의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아. 진정해요. 인카르의 기사로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가씨를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차분한 손길이 시에나의 비둘기처럼 애잔한 앞이마를 쓸어 내렸다.

가리온의 어깨에 매달린 시에나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슴 뛰는 소리가 가리온에게도 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 두근거림은 더욱 커졌다.

"크크크……. 눈물겨워서 못 봐 주겠구먼. 크크크……. 기사 양반, 그렇다면 인카르는 기사에게 무얼 주지? 크크크. 신의 복을 주나? 참! 그들은 신이 아니지? 크크크……. 고작 인간들끼리 말이야. 아! 아! 검을 주나? 크루어? 크크크. 또 있네. 이 건망증하고는. 인카르가 칭호도 주지? 유명하잖아. 아무한테나 검신, 검성이라고 부르지? 검신은 뭐고, 검성은 무슨 검성이야! 비천한 인간 주제에! 고약한 것들!"

성난 누트 샤인의 비명이 용암의 열기가 가득한 허공에 울려 퍼졌다. 시작도 끝도 모를 음산한 목소리가 동굴 벽에 메아리 쳤다.

가리온의 가슴 속에는 분노가 차 올랐다.

"이리 나오너라! 이 바기족 괴물아! 인간도 아닌 것이, 감히 나의 아버지 검성의 위명을 욕되게 하느냐!"

'아버지? 이 사람의 아버지가……. 검성! ……. 슈마트라 초이!'

시에나는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흐느낌을 멈췄다. 온 몸에서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위로 올라가고 있는 용감한 기사가 자신이 매달려있는 이 남자가 검성 슈마트라 초이의 아들이었다니!

시에나의 가슴이 더욱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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