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Yesterday - 역사의 시간 - 10장.Cain and Abel. 두 아들
| 21.01.06 12:00 | 조회수: 1,042


듀스 마블은 검게 휘몰아치는 연기에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가리온의 검에 찔린 시에나는 둘째 치고, 시에나의 어깨에서부터 뿌려진 검은 안개는 정말로 사양하고 싶었다.

“젠장!”

검은 연기에 휩싸이는 가리온과 시에나의 모습 위로 어린 시절 보았던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이대로는 결코 살아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확실한 본능이었다.

“도망가야 해.”

듀스 마블은 엉거주춤 기우뚱거리며 뒤돌았다. 차가운 검은 연기가 곧 뒷목을 쥐어 짤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이번만은 슈마트라 초이를 향하던 살의마저도 잊게 만들었다. 듀스 마블은 도둑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무조건 뛰고 또 뛰었다.

단상 위의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돌아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듀스 마블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도망쳤다.

그러나 극도로 긴장한 연약한 몸뚱이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허억. 허억.”

헐레벌떡 인카르 신전 모서리에 닿은 듀스 마블은 땀을 닦으며 숨을 다시 채웠다.

“가야 해. 가야 해. 조금이라도 더 멀리.”

듀스 마블은 벽에 몸을 기대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갑자기 눈물이 차 올랐다. 작고 가는 듀스 마블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물이 주름진 눈두덩을 넘어 내려갔다.

“이건 아니야. 현실이 아닐 거야. 아닐 거야. 그래. 아니야….”

한참이나 눈물을 닦고 나서야, 단상에 시선을 줄 수 있었다.

“하아….”

이제 겨우 조금이나마 흥분을 가라앉힌 듀스 마블은 예리한 눈으로 단상을 살폈다.

가리온과 시에나, 슈마트라 초이, 디에네 비노쉬,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단상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하늘까지 치솟은 검은 기둥뿐이었다.

‘정말 그랜드 폴이 다시 온 것인가?’

듀스 마블은 기둥을 노려보았다.

“아니, 저건 아니었어.”

그랜드 폴을 기억하는 듀스 마블의 머리 속에는 저런 기둥은 없었다.

그랜드 폴 당시에는, 트리에스테 대륙의 모든 하늘이 검은 안개로 자욱했다. 방주 아르카나 위에 있던 하늘도 검은색이었다. 그래서 아르카나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포함한 온 사방이 가려져 있었다. “… 그렇다면, 도대체 저건 무엇이지?”

듀스 마블은 조금 더 지켜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다시 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상황이 어찌되었던지 저런 기둥 안에서 살아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슈마트라 초이만 죽는다면, 그걸로 된 거야….”

“그래? 듀스. 너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냐?”

듀스 마블의 숨이 다시 콱 막혔다. 비나엘르 파라이를 등에 업고 땅땅거리던 세월이 언제였냐는 듯 벌벌 떨며 움츠러들었다. 처음 비나엘르 파라이를 만났을 때 그 위엄에 꼼짝할 수 없었던 것처럼 모두 정지해버렸다.

“난 기다리라고 했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다 저물어가는 해를 등지고 검은 얼굴로 듀스 마블을 내려보았다.

“내 아들을 이런 식으로 대해야 했느냐?”

듀스 마블의 시선이 멈춰버렸다. 동공이 점점 커졌다.

비나엘르 파라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뭐라고 하신 겁니까….”

“내 아들이라고 했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잔인하게도 듀스 마블이 받은 충격을 더 깊이 찔러 주었다.

“그는 나의 진실한 아들이다.”

듀스 마블은 몸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다리를 지탱해주던 힘이 한꺼번에 풀려 무릎부터 털썩 꺾였다.

“저는,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너도 알고 있었지?”

“그러나 그는….”

“내 핏줄을 말릴 셈이냐?”

비나엘르 파라이의 목소리가 날카롭고 거칠어졌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당신이 바라는 대로 되었다가는!”

듀스 마블은 소리를 버럭 지르다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다음 말이 너무도 위험스러운 것이라 입으로 끄집어내면 반드시 실현될 것만 같은 두려움을 주어 멈춘 것이었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웃는 것 같지도, 화내는 것 같지도 않은 묘한 표정이었다.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지?”

듀스 마블은 기가 막혔다. 결코 비나엘르 파라이에게 물러서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말했다. 단상에서 퍼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더욱 짙어져 있었다.

“어차피 이미 그는 죽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

듀스 마블은 더욱 놀란 눈으로 비나엘르 파라이를 보았다. 광장의 바람이 듀스 마블만을 세차게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듀스 마블을 이끌었다.

텅 빈 인카르 신전을 울리던 듀스 마블의 신발 소리가 점차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 비나엘르 파라이는 벽에 기대어 겨우 서 있는 듀스 마블에게 여유롭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그는 살아날 거니까.”

“도대체, 왜 그렇게 그를 살리려 하시는 겁니까?”

듀스 마블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는, 당신에게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그것은 네가 결정할 일이지.”

비나엘르 파라이는 되물었다. 듀스 마블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신전에 울리는 신발 소리가 다시 귀에 들어왔다.

듀스 마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형이겠구나.”

비나엘르 파라이의 어깨가 들썩였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스스로 침착 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듀스 마블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듀스 마블의 눈에는 비나엘르 파라이가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날, 버린 거야.’

듀스 마블은 뚫어져라 비나엘르 파라이를 노려보았다.

“들어가자.”

방은 창이 없었다. 마치 예전 방주 아르카나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어둑한 실내에는 치유의 향내가 가득했다. 슈마트라 초이를 위해 향을 피운 것이었다.

슈마트라 초이는 방 가운데에 있던 긴 의자에 눕혀져 있었다. 반쯤 벌거벗은 그의 몸은 깨끗이 닦여졌지만, 지혈을 위해 붕대로 감은 팔을 제외하고는 온 몸이 누렇게 바래 있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문을 굳게 닫고 듀스 마블을 지나쳐 슈마트라 초이에게 다가갔다.

“슈마트라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듀스 마블은 자리에 뻣뻣하게 고정한 채로 서 있었다. 클로비스에게 마비되었던 조디악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당신들이 죄인을 치료했군.”

비나엘르 파라이가 이 곳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힘을 썼으니, 조디악들이 슈마트라 초이를 치료했을 것이라는 듀스 마블의 생각은 옳은 것이었다.

조디악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비나엘르 파라이의 눈치만 보았다.

“듀스. 이리 오거라.”

“그는 죽어야 합니다.”

듀스 마블은 날카롭게 말했다. 어쩐지 더 이상 죽음도 두려울 것 같지 않았다. 이미 비나엘르 파라이에게 버려진 것 자체가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시기하는 것이냐?”

“하. 하하. 하하하하.”

듀스 마블은 크게 웃었다.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더 크게 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우스워. 정말 우스워.”

비나엘르 파라이는 고개를 휙 돌렸다. 노한 얼굴 위로 핏줄이 꿈틀거렸다.

“괘씸한 것!”

듀스 마블의 몸이 불타듯 뜨거워졌다. 듀스 마블은 그래도 비나엘르 파라이를 같이 노려보았다. 죽어도 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으으…. 그는 죽어야 합니다! 트리에스테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죽이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저 자의 아들도!”

비나엘르 파라이는 벌떡 일어나 듀스 마블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똑똑히 듣거라.”

차가운 목소리가 방안의 모든 온기를 얼렸다.

“너는 내 아들이었으니, 죽이지는 않겠다.”

비나엘르 파라이의 눈은 금방이라도 듀스 마블을 삼킬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네 생명과 죽음은 내 손에 있으니, 나를 시험하지 말아라.”

듀스 마블은 불타는 열과 비나엘르 파라이의 눈을 버텨내기가 힘에 겨웠다.

‘이대로 물러서면 안돼. 절대로 안돼.’

비나엘르 파라이는 듀스 마블을 조금 더 노려보더니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그와 함께 화염 같은 열도 사라졌다.

‘비나엘르 파라이가 먼저! …내가 버텼어!’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타버린 온 몸은 쓰라린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듀스 마블은 어쩔 줄을 모르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치료해 주어라.”

비나엘르 파라이는 조디악들에게 지시하고는 슈마트라 초이를 내려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 칼리지오 밧슈를 닮은 것 같았다.

“슈마트라. 형의 잘못을 용서할 거지?”

가만히 찰진 머리를 쓰다듬고 미열이 있는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용서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거야…. 너희는 곧 멀리 여행을 떠나야 하니까….”

입술을 떼며, 비나엘르 파라이는 듀스 마블을 돌아보았다.

듀스 마블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들으며 비나엘르 파라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세계의 자아는 본래 하나이니, 뒤섞인 핏줄이 가장 탐욕스러운 뿌리를 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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