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Yesterday - 역사의 시간 - 7장. Unexpected. 예기치 않은
| 21.01.06 12:00 | 조회수: 941


그것은 가리온에게서 멀지 않은, 단상 곁에 있던 남자 아이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가만히 아이는 서 있었다. 그 아이가 왜 검은 회오리가 불어 닥치는 단상 옆에서 도망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을 잃어버려서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흔하고 평범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짧은 옷 소매 끝으로 드러난 팔은 푸른 물집이 잡힌 것 마냥 넓게 부풀어 있었다. 검은 연기가 스치면서 생겼을 그 자국으로 아이는 눈물이 노랗게 부은 얼굴을 자꾸만 문질러댔다. 방향을 잃어버린 채, 그 여리고 작은 입술로 부르짖고 있는 아이는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이 노랗게 얼룩져버린 듯 했다. 그 사이, 눈물 콧물을 쓱쓱 닦아내던 아이의 순진하고 애닯은 모습이 점점 찌그러져 갔다.

누르고 푸르게 부풀었던 부위가 더욱 두드러졌다. 헐렁하게 입혔을 아이의 옷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눈물이 가득 고였던 눈망울, 뭉툭하고 둥그렇게 솟은 귀여운 콧방울 할 것 없이 보기 흉한 모습으로 문드러졌다. 아이의 구슬프던 울음소리가 끄억 끄억 괴상한 소리로 바뀌었다.

작고 처량한 아이의 몸은 끝을 모르고 부풀어 오르더니, 곪을 만큼 곪은 종기가 터져버리듯 파앗 사방으로 터졌다. 뼈가 간신히 남은 몸뚱이에서 역겨운 수액들이 흘러내렸다. 질긴 살가죽이 뼈에 축 늘어졌다.

“으어어….”

허물어지는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천진한 아이는 없었다. 질퍽하고 검은, 작은 뼈 집합이 보일 것 같지도 않은 퀭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날카로운 뼈들이 삐끗 어긋날 때마다 못으로 철제 양동이를 긁어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듣기 싫게 시끄러웠다.

어쩌다 손에 채이는 것이 있으면 사정없이 할퀴고 갈겼다. 미처 달아나지 못한 사람은 뼈에 찍혀 살점이 떨어져나갔다.

“으아악.”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끝을 모르고 높아갔다.

“도망쳐!”

“꺄아.”

“살려줘!”

변한 것은 단상 옆의 아이뿐이 아니었다. 루앙 광장 곳곳에 아이처럼 뼈마디만 남은 사람들이 즐비했다.

루앙 광장은 도망치다 시체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 뼈만 남은 사람들의 모습에 기절해 버리는 사람, 얼굴이 검댕이 되어 통곡하는 사람들로 즐비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재앙이 루앙 광장을 뒤덮었다.

“저리 비켜!”

“먼저 비켜!”

“미치겠군!”

헬리시타의 주민들과 제노아군은 이제 서로 루앙에서 벗어나려고 경쟁했다.

“이 쪽을 뚫어야겠어요!”

칸은 요지부동인 사람들을 밀쳐내며 잔바크 그레이와 파그노를 불렀다. 잔바크 그레이는 아이언 테라클을 어깨에 걸치고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히익!”

파그노는 갑자기 괴물이 되어버린 옆 사람을 눈을 크게 뜨고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자네도 저렇게 되기 전에, 어서 와!”

잔바크 그레이는 아이언 테라클을 엎으랴, 파그노를 끌어가랴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칸이 앞에서 길을 터주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으어어….! 잔바크! 잔바크!”

“이번엔 또 뭐야!”

“저, 저것 좀!”

파그노는 겁을 먹고 달리다가 넘어져버렸는지, 사람들이 꽉 차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에서 주저 앉아 손을 휘휘 젓고 있었다.

“저것 좀 어떻게 해줘!”

“제길.”

잔바크는 아이언 테라클을 칸에게 부탁했다.

잔바크가 돌아서자 날렵한 검이 괴물을 두 조각 내었다.

“잔바크. 잔바크!”

“어서 일어나!”

“잔바크! 우리도 저렇게 될까? 우리도 저렇게 되는 건가?”

“저렇게 되기 싫으면 얼른 일어나라구!”

파그노를 언제 주저앉았냐는 듯 얼른 일어서서 잔바크 옆으로 붙었다. 잔바크는 파그노의 갑옷을 툭툭 두드렸다.

“갑옷 속에 단단히 피해야 할 거야. 공중에 떠다니는 검은 알갱이들에 닿아서 괴물이 되는 것 같으니까.”

말 많은 파그노였지만, 이번 만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자! 어서 가자! 다들 도망치고 있어! 우리도 빨리 가야지!”

잔바크는 칸에게 가서 아이언 테라클을 다시 받았다. 칸은 파그노를 챙겼다.

“서둘러요! 어서!”

파그노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고 잔바크와 칸을 따랐다.

가리온과 시에나를 가둔 검은 기둥은 하늘까지 높이 솟아 올랐다. 기둥은 하늘과 섞이듯 춤추며 검은 알갱이들을 퍼뜨렸다. 순식간에 루앙 광장은 검은 재들로 가득 채워졌다. 알갱이들은 루앙 광장에서 멈추지 않고 헬리시타를 삼키기 위해 몸을 더 크게 흔들었다.

아직 온전한 사람들은 어두워진 하늘을 두렵게 바라보며 집 안으로 피해 들어갔다.

“어서 들어가!”

“집 안은 괜찮을 거야!”

어둠이 찾아온 헬리시타에 하나씩 등이 켜졌다. 집안으로 피한 사람들은 불빛들처럼 조마조마해하며 창가로 모였다. 노랗고 붉은 불빛들이 창에 비추어 아른거렸다.

조용히 숨을 낮추고 밀리고 밀치는 사람들의 물결이 장사진을 이루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기 저기에 죽어버린 사람들이 흉측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한 곳에 모인 가족들이 서로의 옷가지를 붙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괜찮겠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타까운 비명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엄마! 으아아아악!”

어느 새 집안으로 들어온 알갱이들이 아이를 삼키고 있었다. 가장 작은 아이의 몸이 안타깝게 부서지는 것을 가족들은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들은 달리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기막힌 눈물만 상기된 볼을 따라 흐를 뿐이었다.

“아… 아가…. 안돼…. 아가!”

“여보!”

“커억.”

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싶었지만 곧 자신의 몸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아직 덩그러니 남아 있는 눈동자로 마지막임을 고하는 작별의 표시를 담았다.

“어어억.”

두려운 고통이 아내의 몸을 휘감았다.

“나…. 나…. 어어억.”

남편은 눈물을 감추며 아내를 안아 주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내의 몸은 점점 더 부풀어 올랐지만 남편은 아내의 몸을 놓지 않았다. 괴물이 되어 버린 아이가 삐그덕 거리며 부모에게 다가왔다. 아버지는 아이를 물리치지 않고 꾸욱 안았다. 아이의 작고 날카로운 뼈가 가슴에 박혀왔다.

“다 괜찮을 거야….”

한 집안의 가장은 아내와 아이를 더욱 세게 안았다.

“내 가족들…. 사랑한다….”

잠시 후, 집 안의 노란 등이 꺼지고 창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름다웠던 가족은 괴물이 되어 루앙 광장에 나타났다.

에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들 도망치고 있었는데, 움직일 수도 없었다.

데비나를 두고 가리온에게 가는 길이었다. 에바는 가리온을 도울 생각이었다. 곧은 다리를 쭉 뻗어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단상 근처에 이르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클로비스?”

클로비스는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단상 곁에서 무언가를 끌어내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에바는 잠시 고민하다가 데비나가 클로비스에게 일러주었을 거라 판단했다.

“저건 뭐지?”

하지만 이 물음에는 어떤 판단도 내릴 수가 없었다.

시체가 끌어지고 있었고, 그게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냥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리온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바람이 세차게 불고 검은 장막이 루앙 광장을 가린 것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에바는 눈을 똑바로 뜨고 클로비스에게 걸어갔다.

“고이 묻어 줘야 해. 내가. 고이 묻어 줘야 해.”

클로비스는 에바가 오는 줄도 모르고 식어가는 디에네 비노쉬를 계속 끌어내었다.

“허엇.”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거센 바람이 클로비스를 방해했다. 바람은 자꾸만 디에네 비노쉬를 불러가려 했다. 이미 엉망진창이 된 클로비스의 몸은 쉽사리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디에네 비노쉬를 잡아 끌었다.

“이잇.”

그 옆으로 에바가 몸을 숙였다.

“클로비스….”

클로비스는 적의로 가득 찬 눈을 부릅떴다가, 에바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처음부터…. 처음부터…. 다 내가.”

클로비스는 디에네 비노쉬를 어루만졌다.

가리온이 슈마트라 초이를 구하려고 듀스 마블과 시에나를 상대하고 있었을 때, 디에네 비노쉬는 외롭게 죽어갔다. 클로비스는 몇 차례나 회복마법을 써보았지만, 디에네 비노쉬는 숨을 트지 못했다.

“묻어 줄 거야. 내가 사랑했던 여자니까. 이번만큼은 내가….”

에바는 클로비스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초점과 청각이 한데로 합쳐진 것 같았다.

“….”

화살을 수없이 쏘아 굳은 살이 눌러앉은 에바의 미운 손이 덜덜 떨렸다. 조금 더 머뭇거리다가 긴 호흡을 한 후에야 에바는 디에네 비노쉬의 어깨를 두툼하게나마 잡을 수 있었다.

사체가 식어가는 것과 반대로 에바의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것이 치솟았다.

에바는 연신 빠르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하늘색 눈망울 아래로 계속해서 불투명하게 번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에바는 디에네 비노쉬를 광장 끝으로 옮길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광장 끝에 도착했을 때,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잊었던 말을 끄집어 올렸다.

“엄마…….”

클로비스는 자기 귀를 의심하며 에바를 돌아 보았다.

에바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지금 루앙에서 가족을 잃고 흐느껴 우는 헬리시타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엄마……. 엄마……”

에바의 구슬픈 음색이 클로비스의 식어가는 가슴을 다시 뜨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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