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Yesterday - 역사의 시간 - 5장. Monster. 괴물
| 21.01.06 12:00 | 조회수: 1,042


밤이 오려는지 헬리시타의 하늘에는 붉은 태양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두 개의 달이 아직 어스름한 하늘에 어느 새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두 개의 달이 떠올랐고, 두 개의 달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이는 없었다.

하늘을 볼 때가 아니라, 땅을 달릴 때였다.

그런 점에서 조디악들의 걸음은 굉장한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들은 뒤를 돌아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검은 회오리로부터, 인카르 신전으로부터, 비나엘르 파라이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멈추시오!”

조디악들은 흠칫 아이언 테라클을 노려보았다.

“아이언 테라클! 어서 비키시오!”

“왜? 어딜 가시려고?”

조디악들은 뒤를 삿대질했다.

“저길 보시오! 어쩌면 그랜드 폴이 다시.”

“입 조심 하시오!”

아이언 테라클이 싸늘하게 말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이 헬리시타를 채 닿기도 전에 단상에서 시작된 검은 바람이 루앙 광장에 몰아쳤다. 그것은 가리온과 시에나, 슈마트라 초이와 듀스 마블을 감추어버린 바람이었다.

조디악들은 그 검은 바람을 피해 황급히 달려 나왔던 것이다.

“다, 당신도 조디악 아니오? 당신이 저기 뛰어들어서 좀 구해 보시오. 우리는 가야겠소! 저 검은 바람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오!”

“크크…. 무능력한 것들.”

“뭐? 지금 뭐라고 했소!”

“인카르 신전도 못 지키는 주제에.”

아이언 테라클은 코를 씰룩거렸다. 그의 온몸이 희열과 통쾌함으로 가득 찬 뜨거운 피에 전율했다.

“무슨 조디악이라고. 쯧. 쯧.”

조디악들은 아이언 테라클의 경멸에 얼굴이 발개졌다. 아이언 테라클은 그런 조디악들의 표정을 즐기며 외쳤다.

“자! 이제 이 쓰레기들을 얼른 처리해 버리자! 슈마트라 초이의 복수를! 기사들에 명예를!”

“슈마트라 초이의 복수를! 기사들에 명예를!”

“이 괴물 같은 놈이! 기어코!”

“너희들이야 말로, 트리에스테를 좀 먹는 괴물들이다!”

아이언 테라클은 그 자리에서 검을 들어 앞에 있던 조디악을 쳐 내렸다. 넓은 잿빛 칼날이 음산하게 반짝였다.

“크헉! 살려…줘!”

“검성의 복수를! 제노아에 영광을!”

뒤에서 때를 기다리던 기사들은 쏜살같이 뛰어나와 조디악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마법을 쓰기 전에 치는 것이 중요했다.

“저쪽이 훨씬 재미있겠군! 칸! 저리로 가자!”

잔바크 그레이가 몸의 방향을 바꾸며 앞으로 치고 들어갔다. 앞에 있던 인카르의 사제가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땅에 피가 고이기 시작할 무렵 옆에 있던 또 다른 인카르 사제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칸은 얼굴에 홍조를 띄우고 잔바크 그레이를 따라 몸을 틀었다.

“이봐! 왜 그리로 가는 거야? 저 쪽은 조디악들이라구!”

파그노는 잔바크 그레이와 칸을 향해 말을 하다가 휙 소리에 깜짝 놀라 검을 두 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뭐, 뭐야! 마법사가 왜 검을 써! 이, 이거 반칙이야! 이보게! 여기 좀 도와주게!”

하지만 파그노의 외침을 듣는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마법을 두려워 마라! 자! 다같이 가자! 오늘은 제노아의 날이다!”

아이언 테라클의 격려에 제노아의 기사들의 사기는 높이 솟아 올랐다.

‘오늘이다.’

아까부터 비나엘르 파라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바람이 광장을 어둠으로 뒤덮은 지금을 틈 타, 아이언 테라클은 조디악을 한 명이라도 더 제거하고자 했다.

출신을 알 수 없다며 천대 받아왔던 지난날의 보상과, 기사로서 영역을 넓힌다는 자부심이 아이언 테라클을 한껏 들뜨게 했다.

“자네도 이리 좀 오게.”

비어 있는 가게 문간에 판자를 대강 가린 틈새로 빛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밝은 빛이 아니었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바깥의 혼란스러운 소리만큼이나 탁한 빛이 조금씩 기어들어 올 뿐이었다.

“으으…….”

헤이치 페드론이 끌고 들어온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가 공기를 더욱 마르게 했다.

“싫어요.”

“그러지 말고 이리 좀 와서 도우라니까. 일손이 부족해. 아직도 바깥에는 많은 사람이.”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오염체가 될 거예요.”

“이봐!”

“우리도 피해야죠.”

룸바르트 겐조는 벽을 짚고 일어섰다. 들고 있던 술병을 툭툭 떨구어 봤지만 더 떨어지는 방울이 없었다.

“저 검은 바람이라면. 확실하게 헬리시타를 잿더미로 만들 겁니다. 보통 냄새가 아니에요.”

빈 병을 휘이 던지자 쌓아두었던 탁자와 의자에 부딪혀 우르르 소리가 났다.

“룸바르트!”

헤이치 페드론은 룸바르트를 찡그려 본 후 얼른 밖을 응시했다.

밖에서 누가 듣고 들어올까 걱정이었다. 부상자가 들어와도 걱정이었고, 아직 멀쩡한 사람들이 들어와도 걱정이었다. 몇 초마다 생기는 부상자들을 돌 볼 여력도 없었고, 멀쩡한 사람들이 들어와 수선을 피우는 것을 말릴 기운도 없었다.

헤이치 페드론은 창가로 걸어가는 룸바르트를 불러 세웠다.

“이봐. 룸바르트. 그러지 말고 이리 오게. 같이 좀 돕자구. 이게 뭔가. 같은 사람들끼리.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말이야.”

“슈마트라 초이는 저기 있겠죠?”

룸바르트는 헤이치 페드론의 말은 신경 쓰지도 않고 단상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회오리는 단상을 집어 삼키고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기서 뭐하고 있을까요?”

“휴…….”

헤이치 페드론도 일어섰다.

“아마. 죽었겠지. 저 검은 연기에 휩싸여서.”

“그러면 내 복수는 다 된 건가요?”

헤이치 페드론이 무언가 말할 찰나 룸바르트가 손가락을 멀리 찍었다.

“아하하. 저기 좀 보세요.“

“룸바르트…….”

“흑마법을 몰라서 저러고 있나? 얼른 도망이나 칠 것이지.”

룸바르트의 눈가가 작게 빛났다.

“안되겠어.”

룸바르트는 휙 돌아 문가로 갔다.

“자네. 어딜 가는 거야?”

“여기는 더 이상 부상자를 받을 수 없잖아요. 제노아에서 온 기사나부랭이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가서 몸 좀 풀어야겠습니다.”

“뭐라고? 룸바르트! 이봐!”

밖으로 나서자마자 검은 연기가 잠깐 사이에 얼마나 지독하게 깔렸는지 룸바르트는 곧 알 수 있었다. 매캐하게 쏘는 검은 연기가 룸바르트의 코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룸바르트는 침을 모아 뱉었다.

“퉷. 이 까짓 연기쯤. 나한테는 괜찮다구. 그 동안 소환술을 물로 배웠는지 알아?”

“룸바르트! 무얼 하려고 그러는가? 밖은 위험해!”

헤이치 페드론은 룸바르트를 따라 나왔다. 헤이치 페드론의 눈에 룸바르트는 너무도 불안정해 보였다.

“소환술 연구하면서 이 정도도 못 버텨요? 부작용에 중독된 건 오래 전 일입니다.”

“그렇지만 저기 단상의 회오리를 보게! 이건 실험이 아니야!”

“같이 할래요?”

“룸바르트!”

“자! 아까에 이어서 한 번 더 해볼까요? 흐음. 좋아. 저 놈 이름은 내가 알지.”

룸바르트의 입술이 매력적으로 움직였다.

“룬 배니쉬 비 가스가이아 보이드 디스팽”

“룸바르트!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아이언 테라클 스핀 사스콰치!”

룸바르트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루앙 광장에서 조디악들과 겨루고 있는 아이언 테라클을 쏘아 보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지 볼까요?”

그것은 아이언 테라클이 조디악을 향해 세 번째로 검을 들이밀던 때였다. 흐릿한 헬리시타의 살벌한 풍경은 그림자마저도 오그라들게 만들었지만, 룸바르트의 주문은 그 작은 그림자를 잘도 찾아내었다.

“크헉.”

아이언 테라클은 비명소리를 질러내고 싶었다. 얼굴 근육을 씰룩 움직여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숨이 콱 막히는 소리가 그가 낼 수 있는 전부였다. 상상치 못할 고통은 아이언 테라클의 모든 근육을 마비시키는 듯 했다.

“크허억.”

목이 콱 막힌 것은 같은 아이언 테라클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등 뒤로는 차마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한기가 서늘했다.

아이언 테라클은 막힌 목구멍을 타고 느물거리는 신 것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뒤통수를 도끼로 찍는 듯한 짜릿한 충격으로 입안에 비릿한 피가 가득 고인 아이언 테라클은 핏분홍 거품을 게워 냈다.

“크억.”

아이언 테라클보다 더욱 놀란 사람들은 조디악들이었다. 눈이 하얗게 뒤집힌 아이언 테라클이 자기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는 것은 볼 수도 없었다. 아이언 테라클의 뒤에서 그림자를 천천히 빠져 나오는 사스콰치가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저…… 저게 어떻게 여기에!”

“누가 불러낸 거야!”

“금지된 마법이군!”

영리한 조디악들은 사스콰치가 소환술에 의해 불려 나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심박수보다 빠르게 깨달았다.

“어서 여길 뜨세!”

“그래. 그게 좋겠네. 지금이 기회야. 어서 가세.”

기회를 주는 신은 변덕이 심한지 아이언 테라클이 눈앞에서 조디악을 놓치도록 만들었다. .

“룸바르트. 자네 도대체 어쩔 셈인가?”

“뭘요?”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마당에 지금 뭐 하는 짓이냔 말이야!”

“글쎄요.”

“저렇게 사스콰치를 불러내 버리면 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

헤이치 페드론은 뺨을 붉히며 성냈다. 어지간한 일에는 속으로 화를 삭여 풀어버리는 헤이치 페드론이었지만 룸바르트의 대책 없는 행동에는 넌덜머리가 났다. 그래도 룸바르트는 여전히 무사태평이었다.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빌려서 소환술을 쓰는데 아무 죄책감도 들지 않나? 대답해 보게! 이제 어쩔 텐가!”

“궁금하다고 하셨죠?”

룸바르트는 장난치듯이 헤이치 페드론을 얼렀다.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

“뭐?”

“당신 친구를 살릴 수도 있었던 방법.”

헤이치 페드론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침만 꿀꺽 삼켰다. 요쉬마 디아메키를 살릴 수 있었던 방법이라는 말은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는 것 같았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살고자 몸부림치던 요쉬마 디아메키가 끝까지 고통스럽게 연구하던 것, 말로는 너무 쉬운 그 것. 소환술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방법.

그 방법을 시에나를 소환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요쉬마 디아메키는 지금쯤 함께 숨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디 있더라…….”

룸바르트는 주머니를 끼적거렸다. 룸바르트는 고급 조끼에 달린 주머니와 바지춤에 달린 자수가 멋지게 새겨진 주머니를 번갈아 쑤셔대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잘생긴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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