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este_대륙의 전쟁 - 11장. The knight of Zodiac. 그리고 또 하나의 기사단
| 21.02.03 12:00 | 조회수: 2,646


사막이라면 응당 뜨거운 열기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살인적인 더위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고, 사막의 모래는 숨을 훔쳐갈 수도 있다. 또는 이계의 괴생명체들에게 씹어 먹힐 수도 있고,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모두 잘 하고 있다.”

바론은 젠킨슨의 팔을 부러뜨리고 백기사단 형제들을 모아 앞으로 더 전진했다.

‘한 순간에 무너졌다….’

젠킨슨은 백기사단에게 넋을 잃었다. 백기사단은 사막을 종횡무진 하며 전쟁을 했다. 쭈볏쭈볏 다가간 델카도르의 군대는 무기를 휘두르기도 전에 스치듯 검을 휘두르는 백기사단에게 쓰러졌다. 델카도르 군이 서 있던 자리는 벼룩이 옷감을 먹은 것처럼 구멍이 펑펑 뚫렸다. 당황한 델카도르 군은 병력수가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우르르 바론과 백기사단의 검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저것이 전쟁이다. 전투다. 백기사단에 비하면. 우리. 우리 군이 하는 것은.’

젠킨슨은 슬펐다. 모래산 끝에 걸친 붉은 해는 하얀 갑옷을 백기사단을 더욱 환하게 비추었고, 오합지졸마냥 뭉쳐서 도망치는 델카도르 군은 지옥의 불을 태우 듯 시뻘겋기만 했다.

백기사단이 화려한 검술이 강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병사 수는 델카도르 군이 훨씬 압도했다. 전투에서 병력의 수가 제일의 전투력임에도 불구하고 델카도르 군이 밀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델카도르 군에게는 백기사단의 신념과 패기가 없었다.

“젠킨슨! 젠킨슨! 어디 있나!”

델카도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젠킨슨은 부러진 팔을 붙잡고 일어섰다. 바론은 몰려드는 기사들을 앉은뱅이로 만들어 버리고, 매지션들을 향해 가는 참이었다.

“젠킨슨! 어서 이리로!”

델카도르가 급할 만도 했다. 매지션들과 세지타 헌터 가운데에 델카도르가 있었다. 젠킨슨은 오른손에 쥐었던 검을 왼편에 쥐었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무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기사단의 기합 소리 아니면, 델카도르 군이 도망치는 잰 발소리, 혹은 델카도르 군이 쓰러지며 내는 비명소리뿐이었다.

“결과가 어떻든. 이건 백기사단의 전쟁이다.”

젠킨슨은 바른 손에 검을 들지 못하고 부상당한 아군을 헤치며 델카도르에게 가야 하는 상황이 치욕스러웠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델카도르는 노안이 서린 눈을 튀어나올 정도로 샅샅이 굴렸지만 가리온 초이와 그의 일행들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가리온을 찾는 데도 정신이 없어 죽겠는데, 델카도르군은 점점 뒤로 밀려 백기사단은 이제 델카도르 근처까지 왔다.

“고작 오십여 명인데. 어째서 간단히 해치울 수 없는 거지? 우리 군이 훨씬 많잖아?”

델카도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십 명쯤 간단하게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병력이 훨씬 많기 때문에 절반으로 나누어 한편은 가리온을 찾고, 다른 한 편은 백기사단을 막으면 될 줄 알았다. 델카도르는 절대로 수색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델카도르 군이 백기사단과 싸우는 동안 도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현명하고 또 유명한 델카도르였지만 가리온 초이의 행방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덕분에 델카도르는 백기사단이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델카도르!”

바론은 델카도르 앞에서 매지션 한 명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지금까지는 싸우지 못하도록 부상만 입히며 속도를 빨리 해왔지만, 델카도르는 군의 우두머리. 그를 겁주어 전의를 더 상실케 하려는 수였다.

“바론.”

“책만 파는 벌레 주제에 심장이 꽤 강한가 보구나.”

델카도르는 바론의 검이 언제 달려들까 초조했지만 물러서지 않으려 노력했다.

“가리온 초이는 어디에 있지?”

“복수의 빙곡. 크레스포. 불의 사슬. 엘타. 전부 실패했지?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나?”

“나를 책 파는 벌레라고 했지만, 역사는 반대로 기록할 것이다. 너를 악마에게 대륙을 팔아 넘기려는 머리 썩은 벌레, 바론이라고 기록 할 테지.”

“이런. 이런. 역사는 강한 자의 것임을 모르나? 내 검 아래 너의 머리가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야. 뷰라보랜더님은 부활하고 백기사단은 명예를 되찾는다.”

“트리에스테 대륙 전부를 희생시켜 찾은 명예가 정말 영예로울까?”

바론은 델카도르의 말에 웃었다. 한 때, 과거에 연연하며 뷰라보랜더가 부활할 날만 그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에 회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바론은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은 기사의 자존심에 못을 박는 일 같게만 여겨졌다. 바론은 멈추지 않았고 이제와 후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흘렀다. 복수의 빙곡에서 숨죽여 왔던 자신의 인생이 보다 쓸모 있었던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바론은 뷰라보랜더를 부활시키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훗. 영예롭지 않은 건 또 뭐냐.”

바론은 웃었다. 그리고 검을 들었다. 델카도르에게 검이 향해졌다.

“…!”

그제서야 델카도르는 눈 앞에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다. 엘타의 태풍 속에서 가리온을 놓쳤을 때, 카론의 힘으로부터 로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아주 어렸을 적 고열에 시달렸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죽음의 느낌은 단지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늘 죽음을 각오해 왔다고 믿어왔지만, 실제로 죽음이 닥치자 두려움은 각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 검이 나를 찌른다.’

델카도르는 바론의 검을 보았다. 눈이 덜덜 흔들렸다. 바론의 검을 피할 용기가 없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겠지.’

델카도르는 자신이 검을 차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는 듯 했다. 머리 속은 온통 죽는 상상뿐이었다.

“델카도르!”

“…아. …. 아.”

바론은 델카도르를 향해 백마를 달렸다. 델카도르는 바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칼 끝에서 빛나는 점이 정확히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론의 입이 벌어져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지만 델카도르는 들리지 않았다.

‘죽는다!’

델카도르가 두려움을 피해 눈을 감아버린 순간. 챙,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델카도르가 세상에서 들었던 그 어떤 소리보다도 맑고 아름다웠다. 델카도르는 천천히 그 소리를 음미했다. 자신의 몸에 어떤 난도질이 가해져도 상관 없을 것 같은 소리였다.

“네가 막아도 난 멈추지 않는다.”

“알고 있소.”

‘이 목소리는?’

델카도르는 확, 눈을 떴다.

“젠킨슨!”

젠킨슨이었다. 그는 델카도르 앞에서 왼손에 잡은 검으로 겨우 바론을 막고 있었다. 델카도르는 바론을 올려다 보았다. 바론은 무표정했다. 금방 젠킨슨을 죽일 것이 틀림없었다.

“안돼. 안돼….”

델카도르가 중얼거리는 순간, 바론은 검을 휘둘렀다. 젠킨슨의 피가 바론의 검을 따라 붉은 장미를 그렸다.

“젠킨슨. 죽으면 안돼. 안 된다!”

젠킨슨은 델카도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등을 굽히더니 땅으로 거꾸러졌다.

“델카도르. 여기를 보아라.”

델카도르의 머리 위에서 바론의 음성이 퍼졌다. 냉랭한 목소리에 델카도르는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검을 빼라.”

가련한 사슴마냥 눈을 둥글게 뜬 델카도르는 바론을 응시했다.

“기사로서 죽여주마.”

바론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젠킨스가 자신의 앞으로 뛰어든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다. 델카도르는 익숙하지 않은 솜씨로 검을 빼 들었다. 델카도르는 기사가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델카도르는 검을 배꼽 앞으로 들었다. 엉거주춤, 검의 무게는 상당히 무거웠다.

‘여기 모인 모두가 이런 것을 들고….’

델카도르는 가리온을 찾으라고 안달했던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삶을 걸고 나온 전쟁터에서 델카도르가 한 것은 군대를 분열시킨 것뿐이었다.

“와라.”

델카도르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때라고 생각했다.

“훗.”

바론은 델카도르가 우스웠는지 웃었다.

“와라.”

델카도르는 다시 말했다. 여전히 작은 목소리였다. 바론은 델카도르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바론의 검은 아까처럼 델카도르를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거리가 좁아지자 검은 창공을 향해 올라갔다.

‘저것을 내려치면.’

델카도르는 끝까지 검을 응시했다.

푹.

바론은 검을 올리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공으로 올라간 검은 다시 내려오지 않았다. 앞에 델카도르가 있는데 바론은 느릿느릿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이언.”

푹. 푹.

이번에 날아 온 화살은 바론의 목에 명중했다. 하얀 갑옷 위로 붉은 피가 분꽃처럼 번지더니 바론은 말에서 떨어졌다. 델카도르는 바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다 저물어가는 해를 등지고 나타난 무리를 보았다. 또 하나의 기사단, 아이언 테라클이 이끄는 인카르 교단의 청기사단이었다. 바론은 그들을 보고 간신히 말했다.

“아직. 바론은. 아직. 살아 있소.”

델카도르는 여전히 죽음의 위기에 처한 기분이었다. 아이언 테라클이 바론과 백기사단을 쓰러뜨렸지만 그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다. 게다가 여전히 가리온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미꾸라지 같은 백기사단 녀석들.”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보다 훨씬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우리 인카르 교단을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 노라크 잔당들과. 델카도르 당신은 들어봤소? 황색당이라고?”

델카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 테라클은 군대를 풀어 가리온 초이를 찾도록 했고, 아이언 테라클과 델카도르는 그 동안의 일을 나누었다. “인카르 교단에 불만을 품은 자들인데, 꽤 거칠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던데? 우리가 거의 전멸시켰소. 그렇지? 잔바크?”

“예.”

델카도르는 아이언 테라클과 잔바크 그레이가 하는 짓이 우스웠다. 애초에 그들이 가리온 초이를 놓치지 않았다면 바론이 자신과 젠킨슨을 향해 검을 겨누지는 않았을 것이다.

“젠킨슨은 괜찮겠습니까?”

“저 정도 상처야. 뭘. 금세 낳겠지. 상관을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소.”

“네….”

“그런데.”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의 눈을 가두려는 듯 빤히 보았다.

“당신, 왜 여기 있소?”

“델카도르님은. 계속 가리온을 쫓았습니다.”

잔바크 그레이가 델카도르의 말을 가로챘다.

“그래?”

델카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리온이 중간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델카도르는 잔바크 그레이를 잠시 보다가 대답했다.

“비나엘르 파라이님이 가리온 초이를 나에게 보내셨을 때 알게 되었습니다.”

“비나엘르 파라이?”

“나에게 백기사단에 대해 물으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아이언 테라클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잔바크 그레이를 보았다. 잔바크 그레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가리온 초이는 혼자 찾아왔습니다.”

잔바크 그레이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계속 하자 델카도르는 말을 덧붙였다.

“한 번은 일행들과 오고, 그 후에 혼자 왔습니다.”

“잠깐만.”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의 말을 정지시켰다. 수색대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찾았나?”

수색대 대장이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가리온 초이와 그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래에 묻히지는 않았던가? 샅샅이 뒤졌는가?”

델카도르는 나서서 물었다. 수색대 대장은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델카도르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찾아보았지만, 없었습니다.”

“자세히 살펴 보지 않아서 그럴 지도 몰라!”

아이언 테라클이 얼굴을 찡그렸지만, 델카도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렌다 사막의 모래를 다 파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델카도르.”

델카도르는 아이언 테라클을 보았다.

“나는 자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알고 싶네.”

“….”

“아무래도 바라트까지 가야 할 것 같은데.”

“….”

“함께 가겠나?”

“….”

“자네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내게 이야기하게.”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의 병력을 합쳤다. 부상병이 다수였지만, 어쨌든 아이언 테라클의 병력은 늘어났다. 좌우에 델카도르와 잔바크 그레이를 둔 아이언 테라클은 서둘러 바라트로 출발했다. 오렌다 사막에는 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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