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este_대륙의 전쟁 - 10장. War. 전쟁
| 21.02.03 12:00 | 조회수: 2,683


갑작스러운 화살 무더기에 불이 실려오자. 그렇지 않아도 붉은 사막은, 붉어지다 못해 검게 그을렸다. 불 바다가 사람을 태우고 하늘마저도 태운 것이다. 순식간에 드러누운 시체들은 모래 언덕을 굴러 사라졌지만,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종말이 다가오는 것처럼.

“적이다!”

백기사단이 눈치 챈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가리온은 말에서 떨어졌다. 놀란 말이 일어서자 허술히 있던 가리온이 땅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가리온 일행 모두의 사정은 비슷했다. 시에나, 에바, 룸바르트, 타마라, 캄비라 바투. 모두 검게 타버린 시체들과 함께 모래 언덕을 굴렀다.

“적이다! 가리온과 그의 일행을 지켜라!”

바론은 가리온을 찾으면서 외쳤다. 바론은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말발굽에 중간자가 밟혀버리는 일은 곤란했다.

“앤드류!”

“바론! 여기네!”

사막의 모래 바람과 불화살이 섞여 연기가 자욱했다. 앤드류는 소리나는 방향에 대고 대답했다.

“뒤는 어때?”

“지옥이야. 열이 들끓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뜨거운 사막이 나를 완전히 지져버리겠어.”

“그게 아니라!”

“응?”

“노라크 교도들 말이야!”

“미안하지만 대답해줄 수 없네! 지금 한 치 앞도 보이질 않거든!”

“젠장!”

바론은 백기사단이 얼만큼의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적이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런 급한 상황에 효율적인 작전을 짜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길. 하늘은 우리를 도와야 해.”

바론은 주위를 서성이다 결심한 듯 외쳤다.

“앤드류!”

“바론!”

“자네에게 모두 맡기겠네.”

“무슨 말이야!”

바론은 앤드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남은 백기사단을 모으려 외쳤다.

“들어라! 형제들이여! 백기사단의 위용을 드러낼 때가 왔도다! 이 연기 끝에 차가운 무기를 든 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자. 가서 우리가 그 무기를 뜨겁게 달구어 주자! 우리야말로 최고의 기사, 운도 마조키에의 후예임을 보여주자! 오늘 우리가 전설이 된다!”

바론의 외침에 살아남은 기사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바론의 오랜 친구 앤드류도 찾아왔다.

“바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우리는 적이 누군지도 몰라. 우리 계산에 없던 일이라구. 여기서 나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남은 형제들 중 다섯을 데리고 가. 의식에 참여할 중간자와 협조자들을 찾아 노라크 교도에게 부탁해라.”

“…!”

“그들이라면 바라트까지 갈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자네는?”

바론은 백기사단을 둘러 보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남은 것은 오십 여명 되는 듯 했다.

“절반이라….”

한 번에 백기사단을 절반의 숫자로 만든 적은, 수 백 명이 넘을 것이 당연했다. 오십의 숫자로는 가당치도 않은 전투였다. 그러나 바론은 뷰라보 랜더와 싸우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천의 기사들이 수백 명, 그리고 십여 명, 앤드류와 바론. 단 두 명만이 살아남던 날을 기억하고 있다. 백기사단은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뷰라보랜더가 부활하는 날 백기사단의 시대는 다시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론은 그 생각을 형제들에게 전했다.

“우리는 뷰라보랜더님과 함께 부활한다. 제 2의 그랜드 폴이 일어나는 바로 그 날에!”

앤드류는 바론의 말에 깜짝 놀랐다. 바론은 죽음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놀랐지만, 앤드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고통을 경험한 그들이었다.

“반드시 그들을 되찾아 바라트로 보내겠네.”

앤드류는 다섯을 골라 출발했다. 후끈후끈한 사막 언덕을 뒤지기 위해 서둘렀다.

“이곳은 바람도 불지 않는 것 같군.”

바론은 사라지지 않는 연기 장막을 둘러보며 말했다. 바론을 따르는 모든 백기사단은 조용히 경청했다.

“결국, 운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자신인가….”

바론은 앞으로 나갔다. 백기사단은 그를 따라 정렬을 갖추었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의 공격을 보완하기 위해 굽은 초승달 모양으로 섰다. 바론은 마지막 말을 시작했다.

“우리는 아마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말자. 내일 밤. 우리가 기다리던 시간이 온다. 그 때. 우리는 신이 되어 부활한다.”

여느 군대처럼 기합 들어가는 소리가 있을 만도 한 순간이었지만, 사방은 지글거리는 소리뿐 고요했다.

“가자. 임무를 완수하자.”

바론은 자신에게 채찍질하듯 말을 후려쳤다. 긴 울음 소리와 함께 백기사단은 연기 장막을 뚫고 돌진했다.

델카도르는 세지타 헌터와 인카르 매지션들을 앞쪽에 더 두었다. 연기가 사막을 가려 적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론도 그러했지만, 델카도르도 적의 수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델카도르님. 이러다 적의 기습이 오면 불리해질 것 같습니다. 원거리 공격수들이 체력이 약해 오래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알아.”

“그렇다면, 어서. 자리를 이동시키는 게. ”

“기다려. 젠킨스.”

“너무 많이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난 자네보다도 더 오래, 이 순간을 기다려왔네. 급할 것 없어. 급하면 오히려 실수를 초래하게 되지.”

“그렇지만.”

“우리가 기습했는데도 아직 잠잠한 것을 보면, 적에는 활을 쏘는 이나, 마법을 하는 이가 없는 것이 분명해. 즉, 기사단. 백기사단이 확실한 거야, 우리를 치러 오려면 분명 시간이 걸릴 테지.”

델카도르는 역사가였다. 자신이 전장에서 이렇게 지휘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브라이켄보다도 북쪽에 있으면서도 평화롭다는 로아 성의 지도자였다. 델카도르는 자신이 늙거나 병들어 죽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시대는, 델카도르 같은 학자를 사막의 전쟁터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델카도르에게는 목표가 있고 용기가 있다. 그것은 역사가 특유의 모험심일지도 몰랐다. 델카도르는 요드의 요구대로 이천딜을 순순히 지급한 자신에게 감사했다.

“젠킨스. 이제 곧 시작될 거야. 나 같은 늙은이는 앞으로 나갈 수 없지만. 나는 우리가 이길 것을 알고 있네.”

델카도르의 사령관 젠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후훗. 신이라…. 백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내면, 자네는 그들을 찾게. 목적을 분명히 하자고.”

“걱정마십시오.”

고요한 듯, 꿈쩍 않던 장막이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 델카도르는 드디어 지시를 내렸다.

“기사들을 전진 배치해.“

“네!”

“드디어 오는구나!”

점점 모래 바람을 벗어내고 거칠게 달려오는 무리가 보였다.

“저게 뭐야…..”

델카도르는 자신의 군사 삼 백 의 절반도 안 되는 숫자가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그들은 백 명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숫자가…?”

델카도르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가리온이 보이느냐? 왜 숫자가 저것 밖에 없지?”

“가리온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몇몇의 말 위에는 두 사람씩 타고 있습니다!”

“몇 필이나 돼?”

“하나, 둘. 모두 여섯입니다!”

“사악한 여섯 신! 그들이다! 어서 짓밟을 준비를 해라!”

“네!”

“인카르 매지션들더러 불을 날리라고 해!”

젠킨스는 델카도르의 말대로 했다. 인카르 매지션들은 불을 연거푸 날렸고, 몇 개의 말이 모래 언덕을 굴렀다.

“델카도르로군. 형제들이여. 동요하지 말아라.”

바론은 앞만 보며 말했다.

“저들은 우리를 얕보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이긴다!”

바론의 볼에 모래 바람이 휙휙 따갑게, 혹은 뜨겁게 스쳐갔다.

“모두 검을 들어라!”

바론은 말을 더욱 빨리 했다.

“으아아아!”

말 한 굽, 또 한 굽, 다시 또 한 굽. 델카도르의 진영이 가까워졌다. 세 번의 말발굽이 남았을 때 바론은 외쳤다.

“등 뒤의 시체는 던져라! 마음껏 싸워라!”

바론의 말이 크게 앞으로 나섰다. 씨앗을 뿌리려는 꽃씨가 바람을 타듯 날았다. 바론의 씨앗이 꽃을 피울 땅은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

“바론!”

델카도르는 바론을 막아야 했지만, 그것보다는 백기사단이 말에서 떨어뜨린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바론이 위장을 위해 등에 묶어 온 백기사단의 시체를 델카도르는 가리온과 일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뒤에서 인카르 매지션과 함께 있던 델카도르는 젠킨스에게 외쳤다.

“젠킨스! 바론은 기사들에게 맡기고! 백기사단이 떨어뜨린 사람들을 찾아! 어서! 그들이 가리온일 거야!”

“하지만! 델카도르님!”

바론의 칼부림 속에서 젠킨스는 위태로웠다. 백기사단의 전설은 허명이 아니었다. 결코 돌아보지 않지만, 가는 길에는 붉은 꽃이 피어난다. 젠킨스의 기사들은 무참히 살해당하고 있었다. 소환술사들도 앞다투어 나왔지만, 둥글게 조여오는 백기사단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젠킨스는 지금 자신이 자리를 뜨면 델카도르의 군사가 절대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더라도 불리한 싸움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젠킨스는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적이 강합니다!”

“그들은 중요치 않아! 멸망을 불러오는 것은 가리온 초이야! 차근히. 가리온부터!”

“적이 너무 강하다구요!”

집중력이 흩어진 젠킨스의 칼은 중심을 잃었다. 노련한 데카론, 젠킨스는 서둘러 집중하려 했지만, 뜨거운 검이 겨드랑이를 파고 들어왔다.

“컥.”

젠킨스는 후들거리는 팔 위로 바론을 보았다.

“이 정도로 백기사단을 꺾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우리가 이미 복수의 빙곡에서 너희 델카도르의 조무래기들을 혼쭐이 빠지게 해줬건만. 주제를 모르고 다시 나타났구나.”

“….”

젠킨스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요동쳤다.

“가서 델카도르에게 전해라. 애석하겠지만. 너희에게 가리온을 넘겨줄 생각은 없다. 그리고. 곧 죽을 것이라는 것도 전해라. 델카도르와 함께 너도 죽여주마.”

바론은 검을 비틀어 빼내더니 다시 붉은 꽃을 휘몰아갔다. 젠킨스는 팔이 후들거려 검을 잡을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젠킨스 같은 동료들이 많았다. 그제서야 젠킨스는 백기사단의 전략을 알아차렸다.

“저들은 숫자가 적다. 그래서 싸우지 못하게만 만드는 거야!”

젠킨스는 어쩌면 오십의 숫자로 삼백 명을 꺾는 게 백기사단에게는 너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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