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este_대륙의 전쟁 - 3장. Fight. 충돌
| 21.02.03 12:00 | 조회수: 936


“빌어먹을.”

아이언 테라클의 얼굴은 기름진데다가 붉으락 푸르락 달아 올라 튀는 기름처럼 화끈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가리온에게 한 발 뒤졌는데, 듀스 마블의 결계 때문에 석상을 부수어야 한다는 게 귀찮기 그지 없었다.

“좀 더 서두르란 말이다! 가리온은 이미 안 쪽으로 진입했다”

아이언 테라클은 말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둘로 나눈 군대를 지시했다. 시간을 단축하려 군대를 나눈 것이었다. 군사들은 아이언테라클의 호령에 한 번 더 기합을 모으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리온! 듀스 마블, 슈마트라 초이! 하나라도 놓치면 우리만 웃음거리가 된다! 트리에스테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면 잠시도 쉬지 말고 석상을 부숴라!”

아이언 테라클의 조바심은 극에 달했다. 이미 가리온이 들어가서 듀스 마블을 죽이고, 슈마트라 초이를 찾아 달아나고 있을지 몰랐다. 그것은 절대로 안될 일이었다. 아이언 테라클은 군대를 모아 여기까지 왔는데 닭 쫓던 개도 아니고, 뒤에서 꼬리만 잡을 듯 하다가 허무하게 손 털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 아이언 테라클님의 명령이다! 좀 더 서둘러라!”

마음이 급하기는 잔바크 그레이도 마찬가지였다. 가리온은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잔바크 그레이를 추월해 가는 듯 했다.

‘가리온은 운이 좋았던 것이다.’

잔바크 그레이가 가리온을 따랐던 이유는, 그가 검성 슈마트라 초이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잔바크 그레이는 검술 실력에 있어서는 가리온과 자신이 비등하다고 생각했지만 검성의 후광에 머리를 숙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너는 끝이다!’

잔바크 그레이는 과도하게 앞으로 나서며 석상의 머리를 베었다. 석상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기도 채 전에 잔바크 그레이는 다른 석상 앞으로 뛰어갔다.

‘네가 끝나면, 나의 시대가 온다!’

잔바크 그레이는 자꾸 욕심이 생겼다. 가리온이 아니라면 기사단장의 재목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잔바크 그레이는 서둘러 가리온을 잡고 싶었다.

“잔바크….”

파그노는 잔바크의 서두르는 뒷모습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오빠.”

칸은 파그노를 불렀다. 전장에서 생각에 잠기는 것은 좋은 취미라 할 수 없었다.

“칸…. 우리는 왜. 가리온님과 갈라서야 했지?”

“무슨 말이에요. 자덴의 명예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가리온님은. 알로켄의 피가 흐른다구요. 대륙을 멸망시킬 거예요.”

“그래. 그랬지…. 근데. 잔바크는. 광기에라도 휩싸인 것 같아.”

“…. 좋은 친구잖아요. 걱정 말아요.”

“글쎄….”

“오빠가 망설이는 마음. 다 알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는 이미 선택했어요. 이제 충돌은 피할 수 없어요.”

칸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헤이치 페드론과 시리엘 아즈는 착잡한 마음이었다. 둘은 싸움을 피하고 차라리 헬리시타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쩌다 우리 일행들이 이렇게 흩어지게 되었는지.”

헤이치 페드론의 푸념에 쿠리오도 씁쓸했다.

‘내가. 캄비라 바투님에게 칼을 꽂을 수 있을까.’

쿠리오는 캄비라 바투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를 만나는 순간 자신의 나약함이 드러나버릴 것 같았다.

“서두르자! 죄인들은 이 안에 있다!”

갈라진 일행의 마음은 물에 뜬 기름처럼 부유했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더욱 열을 올렸다.

“자! 자! 고지가 바로 앞이다!”

가리온은 앞을 보기 전에 뒤를 확인했다.

일단 듀스 마블을 만나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듀스 마블에게만 집중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사죄의식을 행하던 루앙 광장에서 가리온은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를 놓쳤다. 시에나에게 정신이 홀린 탓이었다. 오늘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가리온은 신중하게 룸바르트까지 확인하였다. 모두들 가리온만큼이나 상기된 모습이었다.

“듀스 마블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듀스 마블이다. 이 앞에는 듀스 마블이 있다. 비나엘르 파라이와 함께 인카르 교단을 쥐고 흔들던 듀스 마블이 있다. 가리온은 그 이름도 유명한 듀스 마블을 잡고 슈마트라 초이를 찾기 위해 헬리시타를 떠났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아이언 테라클이 가리온을 잡기 위해 뒤따라 왔다지만, 그런 것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린 놈을 놓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결심하듯 말하고서,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보는 듀스 마블이 있었다. 그는 공중에 떠 있었다. 가리온은 아마도 주문에 의한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무엇인가 전과 달라 보였지만 잔인하게 죽은 시체들은 그가 영락없는 듀스 마블임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거침없는 흑마법으로 방금 또 한 명, 듀스 마블에게 달려들던 데카론이 죽었다.

“벌써 여러 명 죽어났군.”

방 안 한 구석에는 관심을 잃은 시체들이 수북했다. 그와 달리 듀스 마블은 평온해 보였다. 아니 표정이 없었다. 작지만 탐욕스럽게 빛나던, 그의 눈동자에서 뿜어 나오던 광채도 없었다. 가리온은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듀스 마블은 예전과는 몹시도 다르게 보였다.

그것은 시에나도 마찬가지였다. 시에나의 보잘것없는 어린 시절, 어둠 속에서 인카르 교단으로 이끌어 준 단 한 사람. 듀스 마블. 오만하지만 빛나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완전히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하긴, 저렇게 많은 데카론들과 싸웠으니 힘을 전부 소진했을 거야.’

“저게 그 유명한 듀스 마블인가?”

캄비라 바투가 일행 중 제일 먼저 나섰다. 캄비라 바투는 전력으로 듀스 마블을 향해 달렸다. 듀스 마블은 누가 보아도 힘 없는 노인이었다. 바기족 특유의 기질로 미루어 짐작하기에 듀스 마블은 한대만 살짝 쳐도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그때 듀스 마블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한쪽 팔로 원을 그리자 하늘색 마법진이 그려졌다. 시에나는 마법진을 보자마자 외쳤다.

“피해요!”

듀스 마블이 팔을 떨쳐내자 마법진이 산산조각 났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서 날카로운 얼음 기둥이 솟아 올랐다. 캄비라 바투처럼 달려가던, 그러나 시에나의 목소리를 듣고도 미처 피하지 못했던 데카론은 얼음 송곳에 심장과 급소가 찔려 급사하거나 고통에 신음했다. 캄비라 바투는 후자에 속했다. 송곳이 발바닥을 뚫었다. 얼음은 아련하게 캄비라 바투의 피를 빨아들이는 듯 했다.

“으흡!”

시에나는 캄비라 바투를 향해 달려가려다 멈칫했다. 듀스 마블이 지금 이 순간, 시에나를 알아본다면 어찌해야 할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룸바르트가 종종 인카르의 개라고 놀렸던 것처럼, 예전의 시에나는 듀스 마블이 시키는 대로 어떤 일이든 해왔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시에나는 듀스 마블이 두려운 한편, 전혀 성장하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캄비라 바투는 내가 치료하죠.”

타마라가 나섰다. 시에나는 타마라의 행동이 고마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얕보지 말자.”

가리온은 슬슬 듀스 마블의 둘레를 돌기 시작했다. 가리온의 일행을 포함한 수십 명의 데카론들이 계속 공격하고 있는데도 듀스 마블은 초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데카론들은 아마도 캄비라 바투처럼 듀스 마블을 쉽게 보았다가 죽음을 당하였을 것이다.

‘무슨 수작을 부릴 지 몰라.’

가리온은 신중을 기했다. 룸바르트와 에바도 마찬가지였다. 가리온을 따라 주위를 돌았다. 그러나 가리온처럼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룸바르트는 듀스 마블을 보자 헬리시타에서의 일이 머리 속에 뱅뱅 돌았다. 에바 역시 사죄의식의 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잊고 싶은 일들이 떠오르는 것이 마치 마법에 홀린 듯 했다. 에바는 불안을 떨치려 애썼다.

‘가리온은 몰라. 끝까지 모를 거야.’

타마라가 캄비라 바투를 치료하는 것을 보며, 에바는 속으로 외웠다.

순간 에바의 귀를 뚫고 들어오는 소리가 있었다. 사락, 옷이 팔락이는 소리. 듀스 마블이 팔을 들어 올렸다.

“또 마법인가!”

에바는 듀스 마블을 향해 활을 쏘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만큼 본능적인 공격이었다. 그래서 에바는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본능적인 공격은 늘 가장 민첩하고 날렵했다.

“하앗!”

그러나 에바와 그의 화살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불 속에 갇혀 버렸다. 듀스 마블은 팔을 휘젓다가 하늘로 올렸을 뿐인데 어느 새 듀스 마블의 손에는 불의 잔상만 남아 있었다.

“에바!”

룸바르트는 에바를 구해내려 같이 화염에 휩싸였다. 가리온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다가 듀스 마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듀스 마블. 네 놈이구나.”

가리온이 으르렁거렸지만 듀스 마블은 동요하지 않았다. 변화 없는 표정으로 또 중얼거리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듀스 마블은 양손을 마주 보게 했다. 검은 공기가 듀스 마블의 손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가리온은 지금 달려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듀스 마블!”

듀스 마블은 주문을 계속했다. 큰 바람이 듀스 마블 주변에 올라왔다. 평온하게 가라앉아있던 그의 머리칼과 망토가 같이 휘날렸다. 그리고 서서히 땅도 흔들렸다. 구석의 시체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듯 덜덜거렸다. 데카론들은 듀스 마블이 지금까지보다 더 큰 마법을 벌일 것임을 알아챘다. 바닥의 돌들이 조금씩 공중으로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기를 봐!”

듀스 마블이 떠 있는 바닥에는 검은 마법진이 생겨 빙빙 돌았다.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

가리온은 바로 듀스 마블의 코앞까지 갔다.

“이야앗!”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가리온은 그때도 슈마트라 초이를 구하기 위해 듀스 마블을 찾아갔다. 듀스 마블을 곧 없애고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 듯 했지만 바로 코 앞에서 실패했었다. 가리온은 다시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검을 조금 더 길게 앞으로 손을 뻗어 후려쳤다. 그리고 듀스 마블은 그 순간 박수 치듯 양손을 합쳤다.

콰광.

검은 연기가 가득 찼다. 큰 소리와 함께 흙이 튀어 올라 사람들을 덮쳤다. 폭발의 위력에 사지가 찢겨진 사람들은 튕겨져 나가 쌓여 있던 시체 더미에 파묻혔다. 한쪽 눈을 잃은 사람, 다리를 잃은 사람, 팔을 잃은 사람, 뒤통수가 날아간 사람. 성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자욱했다.

가리온은 헬리시타가 떠올랐다. 시에나와 싸울 때, 이런 경험이 있었다. 사방이 검게 변해버렸던 기억. 붉은 눈이 층층이 달린 괴물과의 싸움. 그리고 그 속의 시에나. 가리온은 싸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상대하는 것은 듀스 마블이다. 듀스 마블은 부모님의 원수다. 아버지 슈마트라 초이를 사죄의식으로 내몰았고, 어머니 디에네 비노쉬를 주검으로 만들었다. 가리온은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물론 가족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가리온의 편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고 자랐다. 가족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다. 그러나 가리온에게는 그 가족이 전부였다. 영웅이 되어 훗날, 자신이 지켜야 할 소중한 전부였다. 듀스 마블은 그 전부를 빼앗아갔다. 비나엘르 파라이의 제안으로 데카론에 참여한지, 반 년 만에, 북쪽을 다 돌고서야 찾은 듀스 마블. 그를 더는 놓칠 수 없다. 듀스 마블은 반으로 쪼개 죽여도 시원찮았다.

가리온은 암흑 따위 신경 쓰지도 않았다. 듀스 마블이 어디 있는지 감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듀스 마블에 대한 증오의 힘은 강했다. 가리온은 힘을 더 뻗었다. 듀스 마블을, 이번만큼은 쓰러뜨릴 수 있기를 기도했다.

“괜찮아요?”

캄비라 바투를 치료하던 타마라는 시에나가 보호막을 펼친 덕분에 무사했다.

“당신이 나를 구했군요.”

타마라는 시에나에게 고마워했다.

“항상 나를 도와줬잖아요.”

시에나는 부끄러워했다.

“타마라. 타마라.”

“에바?”

에바는 흙투성이였다. 피도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러나 에바의 피는 아니었다.

“룸바르트를… 룸바르트를 좀 살려줘.”

에바의 목소리보다도 먼저 들어 온 것은 피투성이가 된 룸바르트였다.

“어떻게 된 거야?”

룸바르트를 엎고 온 에바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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