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rak - 이교도의 유물 - 11장. Stranger. 크루어를 든 이방인
| 20.12.16 12:00 | 조회수: 923


룸바르트는 몹시 놀랐다. 사촌인 다이몽 루세는 자신과 어릴 적부터 함께 공부하며 자란 사이로, 반듯한 길만을 걸어 온 모범생이었다.

룸바르트가 여색에 빠져 있을 때에도, 다이몽은 전혀 휩쓸리지 않고 차근차근 실력만을 키워 나갔던 수재였다. 그런 다이몽 루세가 기사계에서 온 촌스러운 놈 때문에 칼까지 뽑아 들었다는 것은 상당히 놀랍고도 재미난 소식이었다.

"에이, 아버지는. 농담하지 마세요. 다이몽 그 골샌님이 그랬을 리가요."

"아니야. 이 놈아. 다이몽이 검을 뺐단 말이다! 그것도 회의장에서! 이야. 나는 다이몽이 그렇게 검을 잘 쓰는 줄 정말 몰랐다. 칼 두 개가 공중에서 번쩍번쩍하는데 잘 보이지도 않아요. 글쎄, 나는 사지가 벌벌 떨리더라니까!"

"다이몽이 검을 잘 쓰기는 하죠."

"근데, 다이몽말고 그 잔바크 그레이도 대단하더라고! 다이몽이 검은 잘 써도 몸이란 게 삐쩍 말라 뼈 밖에 없잖냐. 그런데 잔바크 그 놈은 힘도 좋아요! 몸집이 아주 기가 막혀! 아주 그냥 그 무거워 보이는 검을 장난감 다루듯이 하더라니까."

"그래요? 어떻게 맞붙었는데요?"

"뭐, 번쩍번쩍하더라니까!"

"아니, 어떻게 번쩍번쩍했는데요?"

"내가 검술의 검 자라도 아냐? 그냥 번쩍번쩍 하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애비를 놀리냐? 요놈아!"

티몬 겐조는 룸바르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 왜 때리고 그래요? 쳇, 그럼 결과나 말해줘요. 누가 이겼어요?"

"참, 그게 말이다……."

잔바크 그레이는 다이몽 루세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자,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기합을 넣었다. 평생 인카르 신전 안에서 머리나 싸매고 있던 조디악들은 살기가 서린 잔바크 그레이의 날카로운 검을 보자 모두들 기겁했다. 그 기세를 앞세운 잔바크 그레이는 원형의 회의장 가장자리에서 단번에 중앙으로 뛰쳐나와 다이몽 루세 앞에 섰다.

다이몽 루세는 인카르의 정식 교육 과정에 따라 오랫동안 검술을 배워왔지만, 평생 검으로 수련을 하는 기사와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때문에 다이몽 역시 손에서 진땀이 바작바작 나도록 긴장되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어버렸던 듀스 마블이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다이몽 루세는 잔바크 그레이에게 눈빛을 부딪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그야말로 무게감 있는 공격을 시작했다.

잔바크 그레이가 힘을 주어 검을 내려치자 다이몽 루세는 잽싸게 몸을 날려 피했다. 가속도가 붙은 검은 다이몽 루세가 피한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의자를 후려쳤다. 챙 하는 쇠 부딪히는 소리가 불꽃과 함께 튀었다. 다이몽 루세는 밑으로 잽싸게 피하며 밑에서 위로 검을 밀어 올리려 했지만, 잔바크 그레이는 어느 새 또 자신의 거대한 검으로 다이몽 루세를 내려 막고 있었다.

짓누르는 힘이 천근의 무게로 내리찍으니 다이몽 루세는 칼을 튕기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민첩하지만 애초부터 체력이 약했던 다이몽 루세는 벌써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 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잔바크 그레이는 태연한 웃음만 날릴 뿐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듀스 마블은 헐떡이는 다이몽 루세의 모습을 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가 정규 검술 교육을 받았다지만, 태생부터 기사인 잔바크 그레이를 이긴다는 것은 무리였다. 듀스 마블은 서둘러 승부를 중지시켰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짓이오!"

듀스 마블은 다이몽 루세를 감싸며, 잔바크 그레이의 코 앞으로 다가섰다. 잔바크 그레이는 그런 듀스 마블의 행동에 놀라, 검을 옆으로 세웠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루려 한 것뿐입니다."

"인카르의 회의장이 칼 싸움 실력이나 겨루려고 만들어진 곳이던가! 기사계니 마법계니 하는 종족을 따지기에 앞서, 당신들이 등록 시기를 이미 놓쳐버린 것인데 그것도 인카르의 잘못이오? 이것은 엄연한 침입이오! 이제 그만 두시오!"

잔바크 그레이는 자신의 실력이 다이몽 그레이보다 월등히 앞서자 억지를 부리며 싸움을 중단시키려는 듀스 마블의 속셈이 눈에 빤히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온 듀스 마블을 제끼고 다이몽 루세를 계속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세 사람 사이에 흘렀다. 손대면 베어질 듯 싸늘한 살기가 느껴지는 긴장감이었다. 잔바크 그레이와 다이몽 루세, 그리고 그 사이에 선 듀스 마블을 지켜보고 있던 티몬 겐조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침을 꿀꺽 삼켰다. 다이몽 루세 옆에 서 있는 듀스 마블이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마법을 쓸 준비하고 있는 것이 티몬 겐조의 눈에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언 테라클 역시나 노회한 여우였다. 즉시 이 눈치를 채고, 잔바크 그레이를 뒤로 불러들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언 테라클인 만큼. 듀스 마블이 준비 없이 다가갈 리가 없었고, 게다가 결코 잔바크 그레이가 상대할 수 있는 마법 따위는 쓰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잔바크! 이제 그만 하게."

잔바크 그레이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아이언 테라클을 돌아보았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음흉한 표정으로 다이몽 루세를 바라보며 짐짓 큰 소리로 말했다.

"기회는 만들면 되는 것이니. 흐흐흐."

티몬 겐조는 아이언 테라클의 말에 크게 놀랐다. 그 말은 꼭 다이몽 루세를 죽여 버리겠다는 엄포로 들렸다. 다이몽 루세도 그 말의 숨은 뜻이 느껴졌는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래서, 그 기사는 칼을 거뒀어요?"

"그렇지. 그 놈도 별 수 없었겠지. 자기를 데려온 아이언 테라클이 그렇게 뱀 같은 표정으로 그만두라고 하는데. 그나저나 정말로 아이언 테라클이 다이몽을 죽일까?"

"큰일 났네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야."

"왜요?"

"듀스 마블님이 가만히 계시겠어? 그 대단한 마법을 한 방 쾅 날리면! 아이언 테라클도 듀스 마블님의 실력을 잘 알고 있으니까, 다이몽을 섣불리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야."

룸바르트는 씁쓸하게 웃었다.

"참! 참! 정신머리하고는! 룸바르트 너 어서 준비하거라. 같이 갈 데가 있다."

"네? 어디요?"

"깨끗하게 입어라. 제발 좀 이상한 모자 따위는 쓰지 말고. 가면서 천천히 이야기하마."

준비를 먼저 끝낸 룸바르트는 저택 입구에서 티몬 겐조를 기다렸다.

은발에 어울리는 하늘거리는 미색 정장을 입은 룸바르트는 깨끗하다 못해 아름다워 보였다.

"이 놈아, 누가 이렇게 입으래? 응? 사내놈이. 원, 하여튼 간에."

"깨끗하게 입으라면서요."

"내가 깨끗하게 입으라는 건 격식을 차려서 제대로 입으라는 얘기다. 응? 이런 날에는 이런 클라스를 입어야지!"

남색의 치렁치렁한 튜닉를 입은 티몬 겐조는 옷자락을 흔들어댔다. 안에 겹쳐진 하얀 색 목면도 같이 펄럭거렸다.

"더워요."

"덥기는! 벌써 초가을이야. 이 놈아!"

티몬 겐조는 서둘러 마부를 불러 마차에 탔다. 룸바르트도 황급히 티몬 겐조를 따라 마차에 올랐다. 서두르지 않으면 귀따갑게 또 한 소리 들을 것이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네 사촌 집에 갈 거다."

"다이몽네를요?"

"그래."

"기사계 파견 결정도 났겠다. 괜히 잘 보이려고 얼굴 도장 찍으러 가는 거죠?"

"이 놈이! 이 놈아! 너는 애비를 그렇게 밖에 보질 못하냐. 이런 몹쓸 놈."

룸바르트는 또 한 대를 맞을까봐 얼결에 눈을 찌푸렸지만, 티몬 겐조는 한숨을 쉬었다.

"휴. 오늘 듀스 마블님이 네 사촌 집에 가실 거다. 가서 제발 좀 잘 보여 봐. 내 미리 네 얘길 은근슬쩍 해 두었으니, 자리 하나 내 주실 거다. 너도 나이가 스물일곱이면 무언가 좀 해야 하지 않겠냐. 맨날 놀러 다니기나 하고. 쯧쯧. 아직도 헬리시타에 너를 거치지 않은 여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도 생각해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야?"

"놀기만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생각하는 거라도 있는 게냐?"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기는 하죠."

"있으면, 어서 좀 해 봐라. 우두커니 관심만 두지 말고. 나도 뒤에서 도와 줄 테니까. 허구한 날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주거니 받거니 부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차는 어느 새 다이몽 루세의 집에 도착했다. 헬리시타의 재력가로 유명한 루세의 저택 앞에 마차가 여러 대 서 있는 걸로 보아,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헬리시타에서 제일 화려하다는 듀스 마블의 마차는 저택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티몬 겐조와 룸바르트는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인카르의 회의실과 같은 최고급의 마감재를 사용한 거실 안에는 와인 잔을 손에 든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낮의 회의에 끝까지 참여한 조디악들도 다들 와 있었다. 정식으로 파티를 연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즐겁고 들떠 있는 것이 그야말로 완연한 파티 분위기였다.

"저기다."

티몬 겐조는 들어서자마자, 듀스 마블부터 찾았다. 그를 찾아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듀스 마블은 언제나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인 가운데, 그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아이고, 듀스 마블님. 여기 계셨군요.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얘, 룸바르트! 여기다! 여기!"

작은 키를 이용해 가운데까지 약삭빠르게 사람들 무리를 뚫고 들어간 티몬 겐조는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듀스 마블에게 말을 걸었다. 그 때까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꽃을 피우던 사람들은 생각잖은 방해꾼에 입맛이 썼지만 더 이상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가 엄청나게 말이 많은데다가 입까지 가볍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룸바르트는 헬리시타의 아가씨들의 은근한 눈짓에 일일이 답하며 듀스 마블과 티몬 겐조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룸바르트 겐조입니다."

"제 자식입니다. 허허허."

"오. 그런가. 자네는 볼 때마다 점점 더 인물이 훤해 지는군."

"과찬이십니다."

"인물만 출중한 것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이 애가 어렸을 적부터, 인카르의 교육이란 교육은 모조리 받아서 못하는 것이 없지요. 허허허."

티몬 겐조는 샐샐 웃으며 룸바르트가 받은 교육 사항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교적인 미소로 참을성 있게 티몬 겐조의 말을 듣고 있던 듀스 마블은 티몬 겐조의 말이 끝나자 룸바르트에게 물었다.

"그래, 제일 자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룸바르트는 전에 없이 눈빛을 반짝이며 입술을 움직였다.

"소환술입니다."

"예, 예. 자식 놈이 자신 있는 분야는 소환술. 으엥? 뭐? 소환술? 이 놈이 미쳤나? 아이고. 아이고. 아닙니다. 듀스 마블님. 이 애가 그럴 리가 없지요. 소환술이라니. 당치도 않을."

"아니오. 괜찮소. 요새는 소외된 부분에도 관심을 돌리는 젊은이들이 꽤 있다고 들었지. 자네도 그들 중 하나인가 보군."

"예, 그렇습니다."

"그래도 너무 깊게 파고들지는 말게. 소외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불법이니까. 이 번을 기회로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좀 가지게나."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듀스 마블은 짧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아이고, 이 놈아. 어쩌자고 그런 말을! 아이, 듀스 마블님! 듀스 마블님!"

티몬 겐조는 계속해서 듀스 마블을 따라가며 매달리듯 애타게 부르짖었다.

"휴우."

룸바르트는 혼자 남아 와인을 홀짝거렸다.

룸바르트가 소환술에 관심이 있다고 한 것은 사실이기도 했지만 듀스 마블이 소환술을 비밀스럽게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려 본 객기였다.

티몬 겐조의 눈에 비친 아들 룸바르트는 항상 여자들이나 꼬시는 불량배였지만 사실 룸바르트는 여자보다는 소환술 모임에 더 관심이 있었다. 늘 어떤 분야에서건 두각을 나타내는 사촌 다이몽 옆에만 서면 룸바르트는 괜히 주눅부터 들었다.

그런 룸바르트에게 아버지의 열성은 오히려 부담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죽은 후, 줄곧 룸바르트만 바라보며 살아 온 티몬 겐조였다.

열등감과 부담감에 짓눌려 점점 냉소적으로 변한 룸바르트는 소환술에 빠지게 되었다. 그랜드 폴 이후 금기되어 온 마법, 소환술은 룸바르트의 삐딱한 삶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소환술은 그에게 그런 비틀린 대리만족 이외에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그것은 은밀한 소환술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숨겨진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환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기원을 그랜드 폴 이전부터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인카르가 세워지기 전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중에서도 비나엘르 파라이가 인간과 사랑에 빠진 신이라는 이야기는 상당히 그럴싸했는데 신이었던 비나엘르 파라이가 한 남자를 사랑해 방주 아르카나를 세우고 인간들을 지켜주었다는 이야기로, 그녀가 인카르가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비나엘르 파라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꽤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것 말고도 놀라운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었다. 가령, 그랜드 폴을 일으킨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지금은 봉인이 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방주 아르카나가 카시미르 산맥과 크로오 산맥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설도 있었다.

제일 유명한 이야기는 듀스 마블이 뒤에서 소환술을 후원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이야기라기보다 소환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듀스 마블은 젊어서부터 소환술에 관심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소환사들은 그가 음지에 있는 소환마법을 양지로 끌어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일부에서는 소환술을 권력을 모으려는 데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의견도 분분했다.

인카르 104년에 있었던 듀스 마블의 원정도 사실은 그가 소환술사들의 실험을 핑계 삼아 주요 도시들에서 떨어져 있는 크레스포에 괴수를 반짝 출현시키고서는 그것을 이계의 오염인양 가장해 자신의 공으로 돌렸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나엘르 파라이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듀스 마블이기에 그런 그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냐는 의견도 많았지만, 룸바르트는 듀스 마블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서기관인 아버지 곁에서 어려서부터 듀스 마블을 보아온 룸바르트는 그가 인카르의 권력이 아닌 트리에스테의 권력을 원한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때문에 듀스 마블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었다.

룸바르트가 듀스 마블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티몬 겐조는 다시 룸바르트에게로 다가와 아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놈아!"

"앗!"

"어쩌자고 듀스 마블님 앞에서 소환술 짓거리를 나불거려? 응? 이 놈이 아주 미쳤어! 미쳤어! 내가 그냥 혀 깨물고 콱 죽어 버리고 말지."

"이해한다고 하셨잖아요."

"이 놈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려! 듀스 마블님이 아량이 넓으시기에 망정이지 넌 다른 신관님께 걸렸으면 바로 사죄의식이야! 이 놈아!"

"그만 좀 때리세요. 보는 눈도 많은데……. 듀스 마블이 뭐래요?"

"그건 또 뭐냐! 듀스 마블님이 친구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아, 정말. 그만 때리라니까요."

"이 휴. 이걸 아들놈이라고……. 널더러 내일 집무실로 오라신다."

"네?"

"정말이지 듀스 마블님이 사람 좋은 분이니 다행이지. 뭐, 그 동안 내가 잘 모신 것도 있지만."

"집무실로 오래요?"

"그래, 내일 오전 중에 집무실로 오면, 간단한 얘기 몇 마디 나누고, 자리 하나 내준단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까. 이번엔 말실수 좀 하지 말고. 제발 좀. 응?"

룸바르트는 대답대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듀스 마블은 소환술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이 놈이, 왜 대답이 없어!"

“꺄아아앗!"

룸바르트와 티몬 겐조는 비명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모여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 같았다.

룸바르트는 사람들을 헤치고 틈새로 파고들었고, 티몬 겐조도 재빠르게 그 뒤를 따라가 섰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겐조 부자였다.

그러나 이번 호기심의 결과는 너무나 처참했다.

"컥! 네……. 네 사촌 다이몽 아니냐!"

연한 하늘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다이몽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왼쪽 옆구리에서는 룸바르트가 숨쉬는 박자에 맞추는 것처럼 쿨컥 쿨컥 선홍색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점점 더 하얗게 바래어가는 다이몽의 얼굴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 고개가 돌려져 있었다.

놀라움에 말문이 막혀버린 룸바르트의 시야에 다이몽의 남색 눈동자가 겹쳐지자, 다이몽은 눈꺼풀을 길게 한 번 깜빡이고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다이몽의 눈부신 검만이 주검 옆에서 허망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이, 이 놈아! 네 놈이 어째서? "

티몬 겐조는 침을 튀기며, 이미 죽어버린 다이몽의 옆에 은색 검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욱."

"아, 아, 아버지……."

은색 검을 쥔 사람은 달려드는 티몬 겐조의 가슴 가운데를 곧바로 찌른 후 살을 파고들 듯 검의 손잡이를 지그시 돌렸다.

티몬 겐조는 소리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다이몽 옆에 그대로 거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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