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 두 번째의 힘 - Apocrypha. Cloudy. 흐릿한 헬리시타
| 20.12.23 12:00 | 조회수: 1,096


헬리시타는 계절이 후반으로 치닫는 데도 여전히 더운 것만 같았다. 아니, 인카르의 신전만 유독 그러했다. 듀스 마블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지만 헬리시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죄의식보다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추위에 자신들이 살 것을 미리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추위보다도 더 문제되는 것은 식량이었다. 세지타족이 바기족과의 전쟁에 휘말리면서 풍요의 땅 네오스는 전처럼 활발한 수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인들도 좀처럼 그곳으로 가기를 꺼려했고, 누군가 곡물을 가져오기라도 하면, 그것은 매우 비싼 값에 돌았다. 헬리시타 성벽의 그늘에 가려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점점 더 죽을 판이었다. 오직 인카르 신전만이 사상 처음으로 집행 될 사죄의식 준비로 계절과 상관없이 후끈거리는 열기에 들떠 있었다.

찰랑이는 술잔을 사이에 놓고 캄비라 바투는 시에나에게 불쑥 말을 꺼냈다.

“난.”

캄비라 바투와 시에나의 눈동자는 정확히 마주 보았다.

“나는.”

캄비라 바투는 너무 뜸을 들이고 있었다. 시에나의 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였다. 캄비라 바투의 모습은 시에나가 듣던 엉성하고 성급한 바기족의 행동하고는 많이 달랐다. 마침내 캄비라 바투는 문장을 완성했다.

“난 바기족이오.”

“네.”

시에나는 속이 많이 탔지만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넘겼다. 이럴 때 함부로 말을 꺼냈다가는 상대방이 시작했던 얘기를 도로 집어넣게 되어버리는 수가 많았다. 캄비라 바투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는 것 같았다.

“바기족은 지금까지 역사의 그늘 아래서 힘들게 살아왔소. 그리고 바로 지금, 저 앞에 자덴이 있소.”

시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비록 두 문장이었지만, 캄비라 바투의 문장력은 훨씬 시원스러워 지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시에나는 그것이 자기가 바라는 대답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캄비라 바투의 눈빛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캄비라 바투는 여전히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에나의 눈빛을 그대로 가두어버리는 것처럼 맹렬했다. 굳은 결심이 섰음에 틀림없었다.

“난 자덴이 바기족의 새로운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소.”

“그 말씀은.”

“더 이상의 계약은 없소. 이제부터 모든 것은 전사의 피로써 성취할 것이오.”

캄비라 바투는 말을 마치자마자 앞에 놓여있던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바기족의 전사들은 나무로 만든 우리 안에 시에나를 가두었다. 그러나 사실 그 나무 우리는 시에나에게 별 것도 아니었다. 시에나는 마법을 부려 빠져나갈 수도 있었고 그리폰을 불러 탈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에나는 얼마 동안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다니.’

시에나는 캄비라 바투를 구슬릴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든 캄비라 바투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바기족이 자덴을 함락한 후, 그 다음 상대는 헬리시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혹은 교섭의 실패를 탓으로 세지타족이 헬리시타를 등질 수도 있었다. 시에나는 이런 저런 고민과 함께 몇 날 며칠을 꼬박 세웠다.

시에나가 갇힌 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진 것 같던 바기족의 역겨운 냄새가 새삼스럽게 시에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오후가 되면서 지열이 피어 오르자 바기족의 냄새는 시에나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시에나는 자신의 약한 몸을 더는 지탱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 아……. 가리온.”

시에나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의식을 잃어갔다.

시에나의 그리폰은 자덴 성 위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바기족 진영을 노려보았다. 성스러운 가호를 받는 그리폰은 자신이 섬기는 주인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음인지, 서서히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라 바기족 진영으로 쏜살같이 향했다.

땅 위의 생물을 멈추게 하는 카랑카랑한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리자 바기족 전사들 몇이 달려들려 했지만 그리폰은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갇혀 있는 시에나를 발견해 냈다. 곧 그리폰은 날개를 이용하여 모래 바람을 일으켰다. 바기족 전사들은 그리폰이 일으킨 모래 바람에 눈을 뜨지 못했다.

“저 그리폰이!”

캄비라 바투가 서둘러 달려오자, 모래 바람이 다시 역으로 불었다. 캄비라 바투의 그리폰이었다. 캄비라 바투의 그리폰은 날개를 접으며 탐색을 하는 듯 날카로운 두 눈으로 상대를 쏘아 보았다.

하지만 시에나의 그리폰은 이미 종이처럼 축 늘어진 시에나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리폰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파악하고, 쏜살같이 하늘로 올랐다. 캄비라 바투의 그리폰이 따라 잡으려 날개를 퍼덕거리자, 캄비라 바투가 그리폰을 불러 들였다.

“도망가도록 둬. 저 여자는 마법사니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어.”

바기족 전사들은 캄비라 바투를 돌아보았다. 마법사를 쉽게 놓쳐버리는 것 아니냐는 원망의 표정들이었다.

“그냥 놔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의 적은 자덴에 있는 세지타들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자덴을 함락한 후, 우리는 곧바로 헬리시타로 갈 것입니다.”

바기족 전사들은 캄비라 바투의 말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폰만이 캄비라 바투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꺾어 돌렸다.

“이제 바기족의 목표는 자덴이 아니라, 인카르인 것입니다!”

“우, 우, 와!”

누군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 함성은 바기족 전사들 전체를 타고 넘쳤다.

“우와! 우와! 우와!”

기나 긴 기다림에 지쳐갔던 바기족 전사들 앞에 트리에스테 대륙 전체를 삼키겠다는 캄비라 바투의 다짐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 것 마냥 달콤했다.

시에나가 깨어났을 때, 그리폰은 크로오 산맥을 뒤로 하고 헬리시타 근처를 날고 있었다. 헬리시타는 먹구름에 짙게 가려 거의 거뭇거뭇하게 보일 뿐이었다. 시에나는 자꾸만 헬리시타의 앞길이 깜빡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시에나는 그리폰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에는 걱정과 불안함이 가득 차 올랐다. 공중에서 본 헬리시타는 마치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시에나는 불길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몇 번씩이나 가라앉은 눈을 깜빡이며 듀스 마블에게 보고할 내용에 대해 생각했다.

룸바르트가 크로오 산맥의 등성이를 따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산맥 저 너머에 구름이 잔뜩 낀 헬리시타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제 거의 다 왔군요.”

디에네 비노쉬는 룸바르트에게 가볍게 웃어 보였다. 룸바르트는 그 웃음이 어쩐지 불편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친구가 원래 좀 무뚝뚝합니다.”

헤이치 페드론은 룸바르트를 대신하여 디에네를 보며 웃었다.

“아. 네.”

디에네 비노쉬를 데리고 오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디에네는 흔쾌히, 그것도 자발적으로 따라 나섰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살인을 했다는 것에 대해 초연한 모습을 보였고, 미로의 숲을 지나는 길에서는 오히려 룸바르트와 헤이치가 함정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자신이 사죄의식의 제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한 것 같군……. 될 수 있는 한 빨리 가야겠어.’

“어이, 룸바르트! 좀 천천히 가지!”

헤이치 페드론은 점점 걸음을 빨리 하는 룸바르트를 불러 세웠다. 숨을 헐떡이는 헤이치 페드론을 잠시 돌아 본 룸바르트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짙게 구름이 깔린 헬리시타의 하늘 아래에서 듀스 마블이 소망하던 일은 곧 성취될 것 같았다.

잔바크 그레이는 크로오 산맥과 맞닿아 있는 카시미르 산맥 동쪽에서 헬리시타를 굽어보았다. 정상에서의 차가운 바람은 잔바크 그레이의 열기를 더욱 깨어나게 했다. 잔바크 그레이 옆으로 말을 타고 늘어선 기사들과 그 뒤로 창을 든 기사들이 모두 같은 열기를 느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잔바크 그레이가 말의 옆구리를 차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하자 다른 기사들도 산맥을 넘기 시작했다.

“가자! 기사들이여! 헬리시타로!”

잔바크 그레이의 눈에 짙고 검은 구름은 인카르와 듀스 마블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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