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io - 의식 - 8장. Sympathy. 동정
| 20.12.30 12:00 | 조회수: 830


헤이치 페드론은 삽을 쥔 인부들을 정신없이 밀쳐냈다.

“뭐 하는 거야? 왜? 왜 흙으로 덮는 거야? 아직 죽지 않았어! 살릴 수 있다고!”

“흠. 흠. 저리 비키시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헤이치는 여전히 비키지 않고 인부의 옷을 잡아끌었다.

“나, 난 의사란 말이오! 아직 안 봤어! 의사가 아직 안 봤어! 살아 있다니까! 난 의사요! 내 말을 좀 들어보라고!”

“거, 의사 양반. 그렇게 하면 눈 감은 사람이 편안히 저승으로 갈 수 있겠소? 자. 이제 그만하고 좀 물러나시오.”

“아니야! 난 아직 못 봤단 말이야! 비켜! 비켜봐!”

헤이치 페드론은 급기야 아직 완전히 흙을 채우지 못한 무덤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아니, 이 사람이!”

“이봐요! 당신이 거길 왜 들어가!”

“난 믿지 못하겠어, 죽었다는 걸 믿지 못하겠다고!”

“안되겠어, 이 사람 얼른 끌어내!”

인부들은 헤이치 페드론의 어깻죽지를 잡아 무덤에서 끌어올리려 했다. 헤이치는 발을 질퍽거리며 몸을 흔들어댔다. 땀과 눈물이 흙에 섞인 얼굴은 볼썽사납게 변해있었다.

“놔! 이거 놔! 약속했단 말이야! 내 친구 요쉬마를 살려낼 거라고 약속했단 말이야! 약속을! 듀스 마블님이! 듀스 마블님이 약속을 했단 말이오!”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헤이치 페드론은 눈을 번쩍 뜨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네오스를 함께 다녀 온 룸바르트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기다란 코냑 병이 쥐어져 있었다.

“아, 이거 좀 드릴까요? 날씨가 선선해지니, 제법 맛이 좋습니다.”

룸바르트는 헤이치 페드론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네가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네.”

다소 진정된 헤이치 페드론은 부끄러운 듯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말했다.

“바로 저기입니다.”

룸바르트는 멀지 않은 곳을 응시했다. 아직 마른 풀이 돋지 않은 새 비석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아버지와 사촌의 묘지.“

“이런!”

헤이치 페드론은 놀라며 룸바르트의 표정을 살피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요…… 난 말이죠, 범인을 봤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죽어가는 과정도 똑똑히. 두 눈으로 봤지요.”

룸바르트는 계속 이야기를 풀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난 아직도 진짜 범인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룸바르트의 눈빛이 헤이치 페드론에게로 향했다. 헤이치 페드론은 룸바르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를 대신한다고 조디악 회의에 참여하고, 복수를 한답시고 네오스에 갔다 오고 했지만,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어요. 기분은 도저히 좋아지지 않는 게 엿 같고, 오히려 내가 죄를 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도 한 모금 주게.”

룸바르트는 코냑을 건네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혼자 복수한답시고 발버둥쳐봤자, 남 좋은 일만 해주는 것 같고. 이런 걸 바라진 않았는데.”

“그래?”

“그저, 같이 슬퍼하고 위로할 사람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어차피.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올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묘지 밖 헬리시타에서는 그런 사람을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린 동병상련이로군. 허허.”

“동정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니. 자네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뿐이야. 나도 친구를 잃고 혼자가 되지 않았는가.”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라고.”

“글쎄. 친구야 만들라고 있는 것이지. 이렇게 나도 자네 곁에 있지 않은가.”

헤이치 페드론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별안간 생각이 난 듯, 눈을 밝히며 말했다.

“룸바르트. 자네, 혹시 소환술이라고 아는가?”

씁쓸한 코냑을 한 모금 마신 헤이치 페드론은 룸바르트에게 병을 다시 내밀었다.

룸바르트와 함께 지하 연구실로 향하던 헤이치 페드론은 시에나를 보고 주춤거렸다.

“시에나…….”

인카르 신전의 정원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시에나는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해 보였다.

“조디악의 개로군.”

헤이치가 놀라 룸바르트를 보았다.

“틀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시에나는.”

헤이치 페드론은 고개를 약간 돌렸다. 만일 그 때, 시에나가 아닌 요쉬마를 치료했더라면, 요쉬마는 살아 있을지도 몰랐다. 의사로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더 이상 시에나를 볼 수 없었다.

“저 아이. 듀스 마블의 오른팔이죠?”

룸바르트가 물었다.

“설마. 아닐 거야. 저렇게 여려 보이는데…….”

“사람은 외모만 보고는 알 수 없는 법이죠.”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군.”

“예? 제가 어때서요?”

“그러지 말고, 아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지.”

헤이치 페드론은 말을 돌리며 슬픔을 덮으려 했다. 요쉬마 디아메키를 잃은 슬픔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그런 헤이치 페드론에게 시에나의 건강한 모습은 죄책감을 불러 일으켰다.

“자네, 부작용을 어떻게 없앴다고?”

“영구적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죠.”

“그래도. 연구에는 큰 도움이 될 걸세.”

두 사람은 나란히 지하 연구실로 향했다.

시에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가 지나갔나? …….”

바람이 살랑이면서 시에나의 오클라스를 들추었다. 의자에 나란히 놓여진 보고서가 같이 팔락였다. 시에나는 몇 장을 들추어 보았다.

영특한 그리폰 덕분에 자덴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시에나는 돌아오자마자 일 더미에 파묻혀 버렸다. 자덴을 다녀 온 일은 그럭저럭 잘 넘길 수 있었지만, 노라크 동굴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적어 낼 수가 없었다.

“기억이 나질 않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에나는 몸을 추스르듯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오른 손 끝에 도돌도돌한 감촉이 느껴졌다. 검게 부르튼 상처 자국이었다.

“이 상처는 또 무엇일까.”

시에나는 인카르 신전에 돌아와 상처를 치료해보려 했지만, 도통 들어맞는 게 없었다. 아무리 해봐도 상처는 그대로였고, 시에나는 이제 그냥 포기해 버렸다.

“아마도. 그냥 흉터겠지.”

“시에나.”

시에나가 뒤돌아보자, 듀스 마블이 얼굴을 찌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보고서로군.”

“아직. 정리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듀스 마블은 긴장한 듯 마른기침을 몇 번 했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시에나는 단번에 무슨 말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쉽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 알고 있습니다.”

시에나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래?”

사죄의식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시에나는 어쩔 수 없었다. 시에나의 목표는 조디악이었고, 실권자는 듀스 마블이었다. 때문에 자덴에서 돌아오자마자 보고서보다도 먼저 의식부터 준비했다.

“그래. 좋아. 잘 되었어. 실수하지 말고 제대로 준비해라. 죄수들도 확인하고.”

“네. 걱정 마십시오.”

듀스 마블은 이야기를 마치고는 잰 걸음으로 정원을 가로질렀다.

‘긴장하셨나.’

시에나는 가만히 듀스 마블의 곧은 등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우중충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살랑이던 바람은 차가워졌다.

시에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보고서를 들어 꼭 끌어안은 시에나는 찰랑이는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하고 크게 호흡했다.

“지하 감옥으로 가봐야겠군.”

몇몇의 조디악들도 시에나처럼 비나엘르 파라이가 부재중인 상황에서 사죄의식을 치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듀스 마블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듀스 마블은 떼를 쓰듯 하루라도 빨리 사죄의식을 치르려 애썼고 앞으로 나서서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아내려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적수를 피해 도망가는 뱀처럼 위험을 슬금슬금 피해 눈치만 보았다.

“슈마트라 초이와 디에네 비노쉬의 사죄의식이라…….”

시에나는 문득 인카르 신전이라고 하는 좁고도 좁은 이곳에서 썩은 악취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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