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io - 의식 - 7장. Escape. 탈출
| 20.12.30 12:00 | 조회수: 1,130


디에네 비노쉬는 무거운 쌍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뿌연 시야 사이로 작은 촛불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말라붙은 피비린내가 먼저 몰려왔다.

“으.”

철컹.

아주 조금 어깨를 들썩거렸을 뿐인데도 양 팔과 다리에 매달린 쇠사슬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디에네 비노쉬는 그 흔들리는 쇠사슬에 온 힘을 빼앗겨버리는 것 같았다.

“여. 벌써 깼는가?”

여전히 안개 같은 시야에 둥그런 게 휘청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비쳤다. 앞이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눈을 다친 듯 했다.

“어디 보자……. 아직 싱싱하군 그래. 낄낄.”

고문관은 털이 송송 달린 보랏빛 붓으로 디에네 비노쉬의 몸을 훑어 내렸다. 디에네는 소름이 끼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상처라도 건드리는 때는 온 신경이 곤두설 정도로 따가웠다.

“저리 가!”

“크큭. 싫어? 왜? 좋잖아? 특별히 더 부드러운 거라구. 좀 느껴봐. 응?”

디에네 비노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퉷.”

“이 년이!”

고문관은 옆에 있던 채찍을 들어 디에네의 몸을 여러 번 휘갈겼다. 한번 갈길 때마다 디에네 비노쉬의 몸에서 빨간 혈흔이 철벙철벙 튀겼다.

“아악.”

디에네 비노쉬는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으로 고개가 꺾여 버렸다.

“이 년! 이 년! 칼로 쑤셔버릴 년!”

“그만…… 그만…… 그만해…….”

“이 더러운 년!”

“그만해! 가만두지 않겠다!”

고문관은 채찍질을 멈추며 시선을 돌렸다.

“호오라, 검성 나으리께서도 깨어나셨구먼.”

“그만해.”

“그만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데? 응? 가만두지 않으면 어쩔 것인데?”

고문관은 부은 얼굴에 홍조를 물들이며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래, 이 년 놈들아! 너희들이 아직 주제 파악을 못하는 가 보구나! 우리 한 번 해보자! 응?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고!”

피 묻은 채찍이 허공을 나풀거렸다.

“퉤엣! 빌어먹을.”

한 참을 더 채찍질 하던 고문관은 그래도 개운치 않았는지, 채찍을 땅바닥에 세차게 내동댕이치고 나가버렸다.

“하아. 당신. 괜한 짓을 했어요.”

디에네 비노쉬는 숨을 죽이며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여기 오지 말아야 했소.”

“네. 어리석었죠.”

디에네 비노쉬는 두 눈을 감아버리며 고개를 숙였다.

“바보같이. 듀스 마블을 믿다니.”

슈마트라 초이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후후. 하아. 그건 내가 해야 하는 말이지.”

얼마간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슈마트라 초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상 모서리에 떨어질 듯 붙어있는 앉은뱅이 촛불이 두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디에네 비노쉬는 두려웠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여기서 풀려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에 참담하기만 했다.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당신이 죽기를 바라지 않아.”

“죽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그래. 당신은 여기서 죽어서는 안돼.”

“방법이 있을까요?”

슈마트라 초이는 팔을 묶어둔 쇠사슬에 서서히 힘을 주었다.

“당신은.”

지하 감옥의 습기 찬 벽에 조금씩 금이 가면서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구해주겠소.”

슈마트라 초이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사도를 지키고 크루어에 맹세한 기사로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받아들이고 트리에스테 대륙 어디론가 떠나 조용히 묻혀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검성의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온 수많은 일들이 한 순간에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다. 무수한 전투에서 용맹스럽게 싸우던 명예로운 자신은 사라지고, 한낱 조롱거리가 되어 또 다시 떠돌이가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던 조디악의 자리는 영영 멀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불안하고 불안한 감정이 가슴을 조이고 숨을 가쁘게 했다.

'나의 과거가 드러나면 난 재기할 수 없어!'

'파견관을 없애면 더 이상 제노아로 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제노아의 사람이 제노아를 다스릴 수 있게 되겠지!’

'그래! 나 검성은 제노아를 위해.'

'제노아를 위해.'

'제노아를 위해! 살인하는 것이다!'

슈마트라 초이가 정신을 차린 순간 그의 검은 피로 젖어 있었다.

다이몽 루세와 티몬 겐조를 죽이도록 조종한 것 은 듀스 마블이었지만 찌른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듀스 마블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그제야 깨달았다.

슈마트라 초이에게 지워진 족쇄는 검성 자신이 지은 죄만큼이나 슈마트라 초이를 억세게 눌렀다. 때문에 슈마트라 초이는 인카르 신전의 지하 감옥에서 제대로 힘을 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성 슈마트라 초이는 그 치욕스러운 고문과 고통을 달게 받았다.

그렇지만, 디에네 비노쉬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결혼조차도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정치상의 책략일 뿐이었다.

더 이상의 희생자를 원치 않은 슈마트라 초이는 디에네 비노쉬를 탈출시키기 위해, 숨겨두었던 힘을 폭발시켰다.

“으으윽!”

투드득.

벽에 덧바른 흙이 점점 들리더니 오른팔에 딱 붙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벽에서 떨어져 나갔다. 힘을 모아 물은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고, 지나친 힘을 받다가 한 순간에 힘이 빠져버린 어깨에서는 뼈가 어긋나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슈마트라 초이는 피 줄기가 난 네모난 턱을 훔치고 나머지 왼팔의 쇠사슬을 떼어내기 위해 다시 안간힘을 썼다. 한쪽 팔의 쇠사슬이 떨어져 무게를 잡기가 쉽지 않았고 오른팔이 뼈가 어긋나 힘을 줄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슈마트라 초이는 버둥거리면서도 끝까지 기운을 넣었다.

디에네 비노쉬는 슈마트라 초이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탈출하려 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런!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고문관이 곧 돌아올 지도 몰라요!”

“나를 믿지 못하겠소? 으으윽!”

그 순간 다른 편 팔도 자유롭게 되었다. 팔이 벽에서 떨어진 순간 슈마트라 초이는 앞으로 거꾸러졌다. 그래도 실로 대단한 힘이었다. 디에네 비노쉬는 슈마트라 초이의 손에서 하얀 빛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세상에!”

슈마트라 초이는 이제 나머지 발을 떼어내는데 열중했다. 디에네 비노쉬는 온몸의 힘을 모두 쏟아내는 슈마트라 초이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그러자 기적처럼 나머지 두 발도 자유로워졌다. 쇠사슬이 박혔던 벽은 쪼개진 벽돌이 투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곧 무거운 쇠사슬을 끌고 일어 선 슈마트라 초이의 눈에 이가 조금씩 빠져 있는 검이 눈에 들어왔다. 슈마트라 초이는 무거운 몸을 이끌어 그 검을 집어 들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일생 잠 한 번 마음 편하게 자보지 못했던 슈마트라 초이는, 어쩌면 자신은 바람처럼 자유로웠던 도적단 생활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어떤 것에도 얽매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이가 빠진 검이, 내가 처음으로 쥐었던 검이지.”

디에네 비노쉬는 검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눈은 여전히 희미했다.

“그 때.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그 검이 혼자였던 나를 지켰고, 가진 것 없는 나를 살게끔 했지. 물론, 찔리고, 다치고, 쓰러지고, 또 좌절하기도 했지만 말이야. 후후.”

슈마트라 초이는 검을 바로 잡으며 디에네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이 검으로 당신을 구하겠소.”

디에네 비노쉬가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슈마트라 초이는 검을 번쩍 높이 치켜들어 쇠사슬을 찍어 내렸다. 챙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디에네 비노쉬의 한쪽 팔이 아래로 축 쳐졌다.

“앗!”

“조금만 견디시오. 곧 다 끊어질 거요.”

디에네 비노쉬는 쇠사슬을 출렁거리며 눈을 아예 감아버렸다. 그러는 사이 슈마트라 초이는 다른 팔에 묶여져 있는 사슬을 끊어내었다.

“아!”

무거운 쇠사슬이 앞으로 쏠리면서 디에네는 거꾸러지려 했다.

“나를 잡아요!”

슈마트라 초이는 얼른 디에네를 어깨로 받쳐 주었다.

“괜찮소?”

“헉. 헉. 이제 두 발만 남았네요.”

피고름이 맺힌 슈마트라 초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군. 좋아. 얼른 끝내 주리다.”

슈마트라 초이는 디에네 비노쉬의 두 발에 묶여진 고랑을 차례로 부숴내었다. 그렇지 않아도 슬어 있었던 검은 이가 몇 군데 더 빠지더니 금이 가 부서져 버렸다. 디에네는 쇠사슬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슈마트라 초이 위로 쓰러졌다.

“아앗!”

“이런.”

“이런 식으로 안기는 건 처음이군요.”

“내가 당신을 안은 것 자체가 처음인 것 같은데?”

“아, 그런가요?”

두 사람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버렸다.

“참, 당신에게 해줄 말이 있어요.”

디에네 비노쉬는 흐릿한 눈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슈마트라 초이를 살피며 말했다.

“가리온에 대한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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