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 - 지옥의 징조 - 1장. Allein. 혼자 가는 길
| 21.01.27 12:00 | 조회수: 700


알로켄족이 인간들을 버리고 상계로 사라진 후, 지금껏 이계와 싸우며 살아온 인간들에게 크레스포라는 곳은 싸워야만 하는 이유를 몸소 깨달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계의 힘이 바로 분출되는 크레스포에서 사정없이 달려드는 괴물들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울 도리 밖에 없었던 것이다.

크레스포의 동쪽 끝머리도 사정이 크게 다른지 않았다. 캡틴 락프레슈어와 일립스, 캡틴 프로즈자이언트와 클레이가 혼재하였고 옆에서 싸우던 데카론 전사 하나가 갑자기 쓰러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치열한 전장이었다.

꾸웨엑. 쿠릉.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괴물들이 쓰러져 가는 소리에 연달아 묻혔다. 괴물의 잔해와 튀기는 눈발, 고막을 울리는 땅의 울림은 고생스러운 것이었지만 가리온은 하나도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이편이 좋아!’

가리온은 이제야 다소 편하게 길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부터 혼자 떠나야 하는 길이었다. 가리온이 가진 운명이 남과는 다른 것이었고, 그것을 홀로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다. 크레스포까지 함께 왔던 동료들에게 도움을 받은 일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받은 우정만큼 마음을 내어주기에는 스스로 벅찼다.

‘결말은 나 혼자 지어야 해!’

스윽. 샷.

가리온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힘껏 검을 휘둘렀다. 나태해져 쓰러지는 바로 그 때, 동료들을 떨치고 온 자신을 책망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랬다.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슈마트라 초이 때문에 가리온을 독살하려던 룸바르트 겐조와도 어느덧 믿음이 싹텄고, 헬리시타의 명의였던 헤이치 페드론과 그의 제자 시리엘 아즈 덕분에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늘 소란스러웠던 파그노는 기사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시작했고, 잔바크 그레이와 칸은 듬직했다. 가리온이 모르는 트리에스테 대륙에 대한 많은 비밀을 알고 있을 타마라의 지식이 탐나기도 했고, 이제 막 일행이 된 캄비라 바투와 쿠리오에 대해 더 알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가리온의 검에 죽은 줄만 알았던 시에나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게다가 떠나기 전날 밤, 에바가 했던 말은 잊을 수가 없었다.

“모르겠어요? 사랑해요! 사랑하고 있어요!”

가리온은 한 순간 에바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리온이 동쪽으로 향하면서 만든 괴물들의 시체 길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환청이야.”

가슴이 어쩐지 시렸지만 어깨가 홀가분해진 탁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쓸데 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동쪽을 향해 가는 가리온의 문제는 철저히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것은 누가 대신 짊어져 줄 수 있는 단순한 종류의 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리온은 홀로 또 다시 카론의 괴물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전진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소리 없는 발자국이 여러 개 찍혔다. 그들은 거대한 바위가 여럿 있는 곳에 몸을 숨겼다.

“쉬잇. 저 자인가?”

“그렇습니다. 저 은검이라면 확실합니다.”

“그런데 왜 혼자 있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그럼, 우리가 처리하자.”

“하지만 지원군이 더 오면 그 때라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알로켄의 피로 움직이는 녀석이다. 저렇게 살려두는 게 죄야!”

“알겠습니다.”

“자! 앞으로!”

우두머리로 보이는 기사 옆으로 열 두 명이 우르르 붙었다. 하이하프 산맥 동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리온을 급습할 셈이었다. 그들은 가리온이 알로켄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살부터!”

간단하게 명령이 떨어지자, 두 명의 세지타가 가리온을 향해 활을 쏘았다.

퍽. 퍼억.

세지타의 화살은 정확했다.

괴물들과 싸우는데 한창이던 가리온은 그대로 어깨와 팔에 세지타의 화살을 맞았다.

“…!”

가리온은 화살을 빼며 날아온 데로 눈을 돌렸다.

“눈치챘다! 불덩이를 날려!”

우두머리는 두 명의 마법사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리온이 빨랐다. 오히려 마법이 날아올 틈을 타서 적의 위치를 알아냈다.

“그런 수법은 뻔하다!”

가리온은 서둘러 검을 들어 싸우려 했다.

“놀라지마! 지금 녀석은 검을 쓰지 못한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가리온이 화살을 맞은 어깨와 팔은 모두 오른쪽이었다. 가리온은 오른손에 은검을 들고 있었고, 그래서 세지타들은 오른쪽을 노렸다. 덕분에 가리온의 오른쪽 팔은 어깨부터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자! 녀석은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다! 얼른 죽여버리자!”

우두머리는 검을 머리 위로 들고 가리온을 향해 뛰쳐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머리가 눈밭을 굴렀다.

우두머리의 몸이 털썩 떨어지자, 무리는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마법을 쓰려 주문을 외우던 자들도 얼이 빠져 더 이상 공격하지 못했다.

“워…. 원래 오른손에만 검을 들고 있었는데….”

세지타 하나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오히려…. 검이. 두 개가. 됐잖아….”

“…. 어떻게 된 일이지?”

“저게. 말로만 듣던. 알로켄의…!”

무리 모두가 갑자기 벌어진 일에 놀라워했지만, 아무도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알로켄의 힘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가리온이 모두의 심장을 은검으로 식혔기 때문이었다.

“역시…. 내가 칼리지오 밧슈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

가리온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내 비밀을 알고 있는 거지…!

복수의 빙곡에서부터 가리온을 노리는 자들이 계속 붙고 있었다.

“나는 그랜드 폴을 불러오지 않아!”

가리온은 억울했다. 제 2의 그랜드 폴을 일으키려 하는 것은 듀스 마블이었다. 그는 가리온의 아버지 슈마트라 초이를 끌고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리온은 그런 듀스 마블을 막고 트리에스테 대륙과 아버지를 구하기로 마음 먹어 왔다.

“어째서 나를!”

가리온은 분노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그렇게 저주받은 사람인가!”

가리온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는 그 손에서 검이 불쑥불쑥 나왔다. 그것이 알로켄의 증거였다. 그리고 그 손에는 피가 묻혀져 있었다. 아직 식지 않은, 방금 가리온이 쓸어버린 무리의 피였다. 가리온을 손을 꾹 쥐었다.

“…. 이래서는 괴물과 다를 바가 없잖아!”

가리온은 눈밭에 손을 마구 문질렀다. 자신이 오래 전 그랜드 폴을 일으킨 알로켄 칼리지오 밧슈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방금 전 무수한 데카론의 영웅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었다.

짝. 짝. 짝.

“역시. 당신.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

가리온은 갑자기 나타난 사내를 노려보며 은검 크루어를 치켜 들었다.

“어이. 어이. 진정해. 나야. 기억 안나? 저기 위에 마을에서 만났었잖아.”

그래도 가리온이 크루어를 치우지 않자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소개했다.

“쿠퍼라네. 얼마남지 않은 노라크 교도이지.”

“… 노라크 교도?”

“알로켄의 힘을 가진 청기사단장이라. 이거 얘기가 좀 되는데?”

쿠퍼는 호탕하게 웃으며 가리온에게 접근했다.

“자네가 알로켄이라면, 칼리지오 밧슈의 이야기도 알겠군.”

가리온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가리온은 칼리지오 밧슈의 후손이었다.

“그래. 자네라면 도움이 되겠어.”

쿠퍼는 가리온을 이리저리 뜯어 보았다.

“동쪽으로 가는 건가? 불의 사슬을 지나, 엘타. 그리고 바라트로?”

“…!”

가리온의 눈에 살기가 이글거리자 쿠퍼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크크. 역시 바라트지. 얼마 전에 바기족 하나도 바라트로 갔지. 그곳에서 차원의 문이 열리게 되는 건가?”

“닥쳐라.”

가리온이 검을 들고 다가오자 쿠퍼는 조금 더 뒤로 물러섰다.

“어이. 이봐. 나도 알로켄은 별로야. 나는 위대한 카론을 섬긴다고.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알로켄은 싫다고.”

쿠퍼는 가리온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하지만. 그래. 어쩌겠어. 위대한 카론이 트리에스테 대륙에 재림하기 위해서는 알로켄의 힘이 필요한 것을.”

“…!”

“이봐. 너무 자책하지마.”

바위 한 곳의 눈을 쓸어버리고 그곳에 앉은 쿠퍼는 가리온을 달래듯 말했다.

“어차피 지금 트리에스테는 너무 썩어버렸어. 사람들은 그게 다 이계의 오염 때문이라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야. 인카르에서 트리에스테 대륙을 통일할 것 같아? 아니, 그렇지 않아. 제노아의 기사들은 자기 마음대로 날뛰지, 세지타족은 자기들끼리 뭉쳤지. 거기다 암살자들인 세그날레까지 대륙 곳곳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데 뭐가 통일이고 안정인가. 비나엘르 파라이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따위는 관심도 없다고.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는 거나, 야생 동물한테 죽거나, 이계 괴물한테 죽거나 매한가지인데 데카론이라고 만들어가지고 전부 이계 탓으로만 돌리고 있잖아.”

“그래서?”

“그러니 괜히 알로켄들도 미움을 받게 되는 거지.”

쿠퍼는 가리온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침 바른 말을 복잡하게 풀었다.

“차원의 문을 열게 되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들은 사라져 버리고, 더 강해지고 싶은 사람은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어. 자네도 알로켄을 만날 수 있다고. 그러면 방금 전처럼 괜히 미움 받으면서 생명에 위협받을 일도 없잖아? 그렇지? 어때? 나랑 손을 잡자고.”

가리온은 쿠퍼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사실 쿠퍼가 말했던 방법이 있기도 했다.

‘차원의 문이 열리고 알로켄으로서 함께 살아간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 운명은 그런 것인가….’

가리온의 시선이 땅으로 떨구어졌다. 이런 생각 자체가 몹쓸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눈에 뒤섞인 피를 보자 함께 웃었던 일행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가리온과 함께 웃었고, 바기족인 캄비라 바투나 타마라와 함께 웃기도 했다. 비록 가리온이 알로켄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신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의 목숨이 서로의 목숨인 것처럼 중요했다.

정답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뒤로 하고, 가리온이 알로켄들과 함께 하게 될 경우에 지난날처럼 웃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너의 이야기에는 관심 없다.”

쿠퍼는 살살 바위 뒤로 몸을 숨기며 징그럽게 미소 지었다.

“지금은 그렇겠지. 그렇지만, 언제까지 너의 그 고독한 길을 홀로 갈 수 있겠는가? 누구든 혼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해.”

가리온은 쿠퍼에게 검을 겨누었다.

“네가 알로켄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 따위는 퍼뜨리지 않겠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면 나를 찾아와. 뭐, 어차피 운명이 당신을 먼저 찾아가겠지만.”

쿠퍼는 재빠르게 바위 틈으로 사라졌다. 그런 쿠퍼를 쫓아가 목숨을 끊어놓을 수도 있었지만, 가리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쿠퍼의 마지막 말이 몹시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운명이 나를 먼저 찾는다고….”

가리온은 마을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바루나가 했던 예언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 운명….”

가리온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결말은 나 혼자 지어야 해!”

가리온은 다시 동쪽을 향해 혼자 걷기 시작했다.

바라트로 가는 배가 있는 엘타. 엘타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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