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este_대륙의 전쟁 - 5장. Death. 아버지의 죽음
| 21.02.03 12:00 | 조회수: 2,067


그러나 아이언 테라클은 가리온이 잡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이언 테라클은 듀스 마블의 목을 탐냈다. 듀스 마블은 트리에스테 대륙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자 어릴 때 함께 수학했던 친구였다. 그의 목이 아이언 테라클의 명성을 드높여 줄 것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검성 슈마트라 초이의 아들 가리온은 알로켄의 피를 가진 중간자. 아이언 테라클은 이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모두 원했다.

“가리온을 잡아라! 듀스 마블도 잡아라! 서둘러라! 잡아 바치는 자에게 상을 내리리라!”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는 경계 태세를 거두고 무기를 세웠다. 사냥에 탁월한 짐승이 먹이를 쫓아 별안간 이를 들어내고 들이닥치듯이,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도 짧은 찰나에 위력을 드러냈다. 삽시간에 인카르 교단의 깃발이 펄럭이며 돌진하는 모양은 용이 입을 벌려 푸른 불꽃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깃발 아래에는 은으로 만든 짐승의 이빨이 살기를 띠고 반짝였다. 그리고 가리온의 일행을 물어뜯으려 거세게 송곳니를 들이댔다.

시에나와 에바, 그리고 타마라는 그들을 막고자 했다. 캄비라 바투와 룸바르트도 상처 입은 몸을 끌고 가리온의 방패가 되려 애썼다. 일행이 그렇게 가리온을 도운 이유는 바라는 것이 있어서였다. 그것은 듀스 마블의 죽음이었다. 인카르 교단을 휘어잡고, 트리에스테를 평정했던 듀스 마블, 그의 죽음이었다. 일행은 그것을 가리온에게 맡겼다. 가리온이 해야 할 일이었다. 다른 이유보다도 듀스 마블은 가리온의 아버지인 슈마트라 초이를 가둬놓았다.

“물러서!”

푸른 물결 속에서 끊어질 듯 얇고 붉은 실이 하늘과 땅을 쳤다. 타마라는 송곳니를 뽑듯 앞에 선 기사의 검을 채찍으로 휘감았다.

“살고 싶으면 멈추는 게 좋을 거야.”

아이언 테라클은 기가 찼다. 가냘프게만 보이는 세그날레가 백 여 명이 넘는 군대를 앞두고 하는 소리는 지나치게 오만했다. 아무리 이계의 암살자라고 해도 한 명은 한 명이었다. 아이언 테라클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세그날레. 이계의 암살자야. 나를 넘어설 자신이 있나 보지?”

타마라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언 테라클. 당신의 야망은 운명을 지어 낼 만큼 거세지만, 신이 택한 것은 당신이 아니야.”

아이언 테라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눈 앞의 하찮은 세그날레는 심기를 건드리는 재주가 있는 듯 했다.

“네가 조금 더 살고 싶어서 말재주를 부리는구나. 그래. 시간을 주마. 지금부터 네가 차라리 죽었으면 할, 고통의 시간을 주겠다.”

타마라는 정중히 인사했다. 옅었던 미소는 입 꼬리가 더욱 올라가면서 진하고 풍부해졌다.

“인카르의 축복을.”

아이언 테라클은 그 모습에 더욱 분노했다.

“너, 세그날레! 이계의 암살자? 웃기지 마라! 너희의 이름은 그것이 아니다! 세그날레, 너희들은 이계족이면서 여기 트리에스테에서 인카르 교단과 손잡았으니, 배신자란 이름이 딱 알맞도다! 이계의 배신자! 지조와 신념 따위는 전부 팔아 먹은 악마들!”

“멍청한 인간들.”

“저것부터 죽여라! 성별도 없는 애매한 것이 인카르의 땅을 더럽히고 있다!”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는 타마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마라는 피의 채찍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체력이 약한 세그날레에게 근접전은 좋지 않았다. 시에나와 에바 역시 원거리에서 공격해야 효과가 컸고, 룸바르트와 캄비라 바투는 부상을 당해서 버텨 줄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타마라는 흐뭇한 미소를 유지했다. 연기가 아니었다. 타마라는 진심으로 웃었다. 아이언 테라클이 타마라에게 관심을 돌린 사이에, 가리온은 전력으로 듀스 마블에게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아!”

공중에 떠 있는 듀스 마블이 어떤 마법을 쓰던지 그것은 가리온에게 중요치 않았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가리온이 이번에 실패하면 기회는 더 이상 없다. 동료들이 아이언 테라클을 막고 있지만, 숫자 상 절대적으로 약세였다. 그들이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 실패하면 아이언 테라클에게 꼼짝없이 잡힐 것이 분명했다.

가리온의 눈에 듀스 마블이 정확히 들어왔다.

‘바로 지금!’

눈 앞은 듀스 마블의 하얗고 부은 목뿐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그의 살은 이미 여러 군데 칼집이 베어져 있었다. 피가 흐르고 흘러, 이제는 더 흐를 피가 모자란 지 석류 봉오리처럼 갈라진 살갗이 비죽 튀어 올라왔다. 피가 마른 듀스 마블의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일 것이었다. 인카르 신전에 틀어박혀 야심을 채울 궁리만 하던 듀스 마블이 현역에서 뛰는 데카론들처럼 체력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듀스 마블을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정신력일 것이었다. 듀스 마블은 마치 원한을 남기고 죽어도 죽지 않은 유령 같았다. 그러나 가리온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리온이 크루어 대신 들고 있는 양손의 검은 한 번도 가리온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보통의 검으로 벨 수 없는 괴상한 것들까지도 양손에 들린 검은 전부 베어 내었다.

“이야아!”

가리온은 주저하지 않고 양 손의 날을 세웠다. 아버지 슈마트라 초이가 사죄의식을 당하던 날이 눈앞에 스쳐갔다.

휘익. 쿠릉.

“아버지의 귀!”

귀가 툭,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듀스 마블의 얼굴에 달렸던 귀 위로 몇 방울 남지 않은 피가 흘러 땅까지 퍼졌다. 그 피에 가리온의 뺨에서 흐른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겹쳤다. 듀스 마블이 가리온이 다가오던 순간 라이트닝 마법을 쓴 것이다. 그러나 가리온의 검은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리온이 쥔 검은 귀에서 그대로 내려왔다. 듀스 마블은 웅얼웅얼, 주문을 외우려 했다.

투둑.

듀스 마블이 손으로 그리던 마법진은 나타나려다가 휘익, 사라졌다. 동시에 두 팔이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검을 들었던 팔!”

땅까지 내려온 검을 가리온은 다시 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으신 내 어머니!”

가리온은 검으로 듀스 마블의 눈을 박았다. 듀스 마블은 뒤로 휘청거렸다. 떨어지는 피는 없었다. 듀스 마블은 계속 웅얼거렸다. 손에서 만들어지던 마법진을, 더는 그릴 수 없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가리온은 화가 치밀었다. 검을 꽂은 채로 무작정 달려갔다. 앞에는 듀스 마블에게 죽은 시체와 성벽이 있었다. 가리온은 성벽에 듀스 마블이 꽂았다. 그리고 물었다.

“말해라.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듀스 마블이 대답할 리 없었다. 듀스 마블은 계속 알아듣지 못할 주문을 외울 뿐이었다. 가리온은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 듀스 마블. 내가 원하는 대답을 네가 해줄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리온은 검을 빼냈다. 그리고 그 검을 듀스 마블의 입에 찔러 박았다.

“내가 찾으면 된다. 이제 너를 죽였으니, 여기 어딘가에서 찾기만 하면 되는 거야.”

듀스 마블은 축 쳐져서 벽에 쌓인 시체들 중 하나가 되었다. 듀스 마블 덕분에 오랜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 같았다. 이제 동료들과 아이언 테라클을 어떻게 따돌리고 아버지를 찾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리온은 돌아섰다.

타마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혼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미소는 전부 사라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아무 일도…. ”

퍽.

타마라는 꿇려진 무릎에 고개를 수그리며 피를 뱉어냈다.

“내가 미처 몰랐구나. 이계의 암살자들이 참으로 말이 많다는 것을.”

아이언 테라클은 기름진 얼굴 근육을 씰룩거렸다. 이제 미소를 짓는 자는 타마라가 아니라 아이언 테라클이었다.

“모두들!”

가리온은 시에나와 에바, 타마라, 룸바르트, 캄비라 바투의 얼굴을 망연자실 계속 훑어 보았다. 보고 보아도, 틀림 없었다. 가리온이 처음으로 마음을 연 동료들의 얼굴에는 듀스 마블에게도 없던 피가 흥건했다.

“왜.”

가리온은 어쩔 줄을 몰랐다. 이렇게 모두가 잡혀버린 상황은 처음이었다. 어리둥절 아이언 테라클을 올려다 보았다. 여전히 말 위에 있는 아이언 테라클이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듀스 마블의 시체를 끌어 와라. 그리고 슈마트라 초이를 찾아라! 여기 모인 전부가 헬리시타로 갈 것이다!”

앞쪽에 서 있던 기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이 정예인 것 같았다. 아이언 테라클은 한 가지 지시를 더 내렸다.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 나는 듀스 마블을 생포할 작정이었는데, 결국 네가 죽여버렸군. 그러나 그 공은 네게 돌아가지 않는다. 어차피 너는 대륙의 재앙이니. 허튼 마음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가리온은 아이언 테라클을 노려보았다. 동료들이 잡힌 지금의 상황에서 가리온은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이언 테라클은 흐뭇한 웃음으로 명령을 내렸다.

“중간자를 붙잡아라!”

푸른 물결을 타고 기사들 다섯이 가리온의 둘레에 섰다. 가리온은 넋이 나갈 것 같았지만 잡히지 않으려고 긴장을 유지하였다. 동료들이 모두 잡힌 상황에서 그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정신이 바짝 들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슈마트라 초이를 찾았습니다!”

‘아버지를!’

가리온은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것 같았다. 기사들이 아버지를 데리고 오면, 아이언 테라클을 치고 동료들과 아버지를 구해서 탈출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는 문을 지키는 백 여 명의 군대를 어떻게 돌파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가리온은 다음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죽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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